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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블로3 한정판은 예약순번이 모두 종료되었고, 디아블로3 일반판은 여러분들의 성원으로 모두 구매되었습니다. ![]() 6시부터 판매한다며?! ![]() 진짜 이럴거면 다른 곳에서처럼 오전 9시부터 팔던가. 괜히 희망고문만 당한 느낌이네요. 스승의 날이라, 오전부터 다른 친구들이랑 고등학교 때 선생님들을 만나러 갔었는데... 이것 때문에 선생님을 원망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 말입니다.(...) ![]() 하지만 한타 할 때마다 아리가 삭제되고 피오라가 녹아나니 결국 소라카로 탱템을 가기로 했습니다. 그 결과 방어력 over 200, 피통 3천에 근접하고 자힐이 가능한 탱커가 탄생... 베인에게 얻어맞으면서도 꿋꿋이 살아남는 소라카가 되었습니다.(...) * 제 151화 : 룩샤나.
"하아아아..." 엘프들의 땅 사하라에 위치한 룩샤나의 집으로 추정되는 건물의 방 안에서, 침대위에 누운 채 잠들어 있는 티파니아의 얼굴을 확인한 파우스트는 허탈스러운 표정으로 입가를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파우스트는 이곳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그리고 최대한 노력을 하기는 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엘프들로부터 위해를 입지 않았는가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상당히 불안감을 느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긴 하지만 넬우얼로부터 들었던, '자신이 해야 할 일'의 시작단계이자 최대의 고비 중 하나였던 '사하라까지의 무사 도착'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냈다는 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안도하며 다소나마 나름대로의 성취감 또한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티파니아가 자신과 함께 여기로 왔다는 것을 알게 된 직후, 파우스트는 무척이나 낙담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 되고 말았다. 설마 엘프들이 자신과 함께 티파니아까지도 사하라로 데리고 올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에, 의외의 상황이 벌어졌다는 사실 자체에 당황한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 보다도 파우스트를 더더욱 골치아프게 만든 사실은, 티파니아가 여기에 있다는 이 예상 외의 변수가 지금의 상황에 있어서 결코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필이면 거기 있던 녀석들 중에서 가장 도움이 안 될 티파니아가... 아니, 누가 여기에 왔다고 한들 도움이 안 되는 건 마찬가지일 테니까, 가장 심하게 발목을 잡게 될 녀석이라고 하는 편이 정확하려나?' 파우스트가 티파니아를 방해물 정도로 생각하는 건 딱히 그녀에 대해서 좋지 않은 감정이 있기 때문은 결코 아니었다. 다만, 이 곳에서의 행동에 많은 제약이 따를 것이 분명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단독으로서가 아니라 다른 한 사람을 동행한 상태로 행동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크나큰 걸림돌이었다. 파우스트의 단독 행동의 자유도를 매우 향상시켜주는 요인이 바로 그가 착용하고 있는 룬워드 이니그마(Enigma)의 텔레포트 기능인데, 이 텔레포트의 대상이 오직 그 자신과 자신이 미니언으로 부리는 스켈레톤이나 리바이브, 그리고 골렘에게만 해당된다는 점이 문제였다. 즉, 누군가 동행이 있다면 그 상대와 함께 텔레포트를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만약 내게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마법적인 재능이 있었더라면... 지금쯤이라면 처음보다도 텔레포트 마법에 대한 숙련도가 더 올라갔겠지. 한 번에 더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다거나, 나 말고도 다른 사람을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야. 하지만 내 경우에, 그간의 경험을 통해 나아진 점은 텔레포트의 정신력 소모량을 줄이는 요령을 발견했다는 것과, 텔레포트를 사용할 최적의 시기에 대한 감각의 향상... 정도로군. 하지만 이건 마법적인 숙련도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룬워드 이니그마가 착용자로 하여금 텔레포트 마법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원리는 '이니그마 자체에 착용자가 텔레포트 마법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마법 술식이 짜여져 있고, 착용자는 이니그마에 의식적으로 일정량의 마력을 공급함으로써 해당 마법 술식을 발동시킨다'는 것이었다. 텔레포트 마법을 사용하기 위한 복잡한 중간과정을 생략한 채 사용자는 일정한 마력만을 제공하면 되므로 굳이 마법사가 아니더라도 룬워드 이니그마를 통해 텔레포트를 하는 것은 가능했고, 거기에 '가장 마지막으로 생성된 세계인 생츄어리 출신의 인간은 월드스톤에 의한 능력의 약화가 적은 편'이었으므로 설령 전사라 하더라도 이니그마에 의한 텔레포트를 사용하는 것은 큰 부담이 없는 일이었다. 사용자에게 충분한 마법적인 능력이 있다면 이니그마를 반복적으로 사용함으로써 감각을 익히는 것으로 텔레포트라는 마법 자체를 습득하는 것도 가능했고, 마법 자체를 습득하지는 못한다고 해도 텔레포트로 이동가능한 거리가 늘어난다거나 마력 소모량을 줄이는 정도로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 또한 가능했다. 물론 소서리스를 포함한 몇몇 마법사들은 교육과정 자체에 텔레포트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이니그마의 힘을 빌리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러나... 가장 마지막에 생성된 세계인 생츄어리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파우스트는 마법적인 능력에 대해서는 괴멸적이라고 표현해야 할 정도로 재능이 없었다. 생츄어리 인간들의 마법적인 재능을 정규 분포표로 나타낸다면 파우스트는 하위 5%에 해당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기에 '의식을 확장시키는 약'을 통해 라스마의 사제로서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요건에 해당하는 마력을 얻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그 정신력의 양은 그가 소환된 세계의 메이지 중 최하급이라고 할 수 있는 도트 클래스 중에서도 밑바닥에 깔린 수준에 불과했다. 기본적으로 이니그마는 착용자가 '일정량'의 정신력을 소모함으로써 텔레포트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데, 파우스트의 정신력은 그 최대 총량이 무척이나 작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몇 차례만 텔레포트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금방 정신력이 부족해졌다. 텔레포트를 거듭해서 사용할 경우 금방 정신력 고갈로 인한 두통을 느낄 정도였고, 이로 인하여 파우스트는 지옥의 군주들을 추격하는 모험의 초반부 무렵만 하더라도 어지간하면 텔레포트 자체를 사용하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이 문제점은 파우스트가 다른 라스마의 사제들의 기술들을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이니그마의 텔레포트 마법을 사용하는데 필요한 정신력을 자신에게서 뿐만이 아니라 자신에게 협력하는 영혼의 마력을 빌리는 것으로 충당하는 요령(그렇기에 라스마의 사제들이 사용하는 마법은 술자의 정신력 소모가 매우 적은 편이다.)'을 터득하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파우스트를 괴롭혔다. 그나마도 텔레포트를 1회 사용하는 데에 필요한 정신력 중에서 자신의 것이 아닌, 다른 영혼의 정신력의 비율을 높여나가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고, 적어도 한 번의 텔레포트에 소모되는 정신력의 양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게 된 지금에 와서도 반복적인 텔레포트의 사용은 파우스트에게 있어서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물론 이러한 발전은 어디까지나 텔레포트의 정신력 소모에 대한 측면에서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의 파우스트도 한 번의 텔레포트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는 최초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12m 가량에 지나지 않았고, 자신과 함께 이동할 수 있는 대상 역시 미니언으로 부리는 스켈레톤과 리바이브, 골렘에 불과했다. 요컨데 파우스트의 텔레포트 마법에 대한 숙련도는 이제껏 조금도 늘지 않았다고, 여태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 분명했다. '후우, 왠지 나 자신의 마법적인 능력이 일천하다는 점에 대한 넋두리가 되어가는 것 같은데... 어쨌든, 난 다른 사람과 함께 텔레포트를 하는 게 불가능해. 그렇기에 다른 녀석과 같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행동에 큰 제약을 받게 될 수밖에 없다고. 게다가 상대가 하필이면 티파니아 녀석이라는 것도 난처하기 짝이 없는 일이고 말이지.' 파우스트가 다른 사람보다도 유독 티파니아와 함께 있다는 상황을 문제로 받아들이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엘프들이 습격했을 당시 그 자리에 있던 자들 중, 티파니아는 가장 싸움에 익숙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파우스트가 딱히 티파니아에게 싸움에 도움이 될 것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티파니아에게 그런 걸 기대하는 것 자체가 지나치게 가혹한 일이기도 했거니와, 애당초 파우스트는 이 곳에서 무턱대고 싸움을 벌일 생각 자체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우스트가 티파니아의 전투 경험의 부재를 문제로 삼은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 바로 자신의 움직임에 티파니아가 잘 따라올 수 없을 것 같다는 판단이 그것이었다. 물론 혼자서 활동하는 것이 텔레포트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으므로 가장 이상적인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누군가와 같이 행동해야 한다면 최소한 자신의 움직임을 따라올 수 있는 상대와 보조를 맞추는 편이 상대적으로 편하다는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그러한 측면에서 볼 때, 티파니아는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중에서 가장 뒤떨어지는 편이었다. 물론 '모두의 보호를 받으면서 주문을 외우는 역할'이 고작이었던 루이즈도 움직임이라는 측면에서는 티파니아와 비교해서 별로 나을 게 없었지만, 루이즈는 텔레포트를 허무의 주문으로 사용할 수 있었으므로 오히려 더 나았다. '뭐, 사실 이런 가정 자체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긴 하군. 어차피 엘프 녀석들의 당초 목적은 나의 납치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티파니아 녀석이 잡혀온 것은 그 녀석 자체에 대한 호기심 때문일 터... 처음부터 티파니아 대신에 다른 녀석이 잡혀왔을 가능성 자체가 없다고.' 결국 파우스트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수순으로 인해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되었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만약 티파니아의 모자가 그녀가 쓰러진 뒤에도 머리에서 벗겨지는 우연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지금에 와서 파우스트가 이렇게나 고민을 떠안게 되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그러한 부분까지도 파우스트가 제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쳇... 그냥 운이 나빴다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지? 이제와서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고 말이야.' 그나마 파우스트에게 위안이 되는 부분이 있었다면, 엘프들이 티파니아를 살려뒀다는 사실이 어떤 의미에서는 다른 일행들이 다치지 않았을 가능성을 의미한다고 볼 근거가 된다는 점이었다. 인간과 엘프의 혼혈인 티파니아는... 그녀에게는 다소 미안한 표현이긴 하지만 '순수한 엘프'들의 입장에서는 매우 혐오스러운 존재로 받아들여질 공산이 컸다. 인간이라는 종족을 야만인으로 부르면서 그저 '말하는 동물' 정도로나 여기는 자긍심 높은 엘프들에게 있어서 그러한 존재와 피가 섞인 티파니아는 그 어떠한 괴물보다도 더 끔찍하게 여겨질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전투로 흥분한 엘프들이 나 이외의 상대에 대해서 보복을 가하려 든다면,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티파니아 녀석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멀쩡하게 데려왔다는 건, 다른 녀석에게는 손을 대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 티파니아에게는 상당히 실례되는 논리전개 과정이긴 했지만, 어차피 머릿속으로만 하는 생각이니 아무래도 좋았다. 자신이 아무리 노력을 했다고는 하나, 현재 파우스트에게는 다른 일행들의 안전을 확신할 수 있는 뚜렷한 근거가 없었으므로 그런 식으로라도 불안감을 덮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으으... 어?" 그러던 차에, 티파니아가 눈을 떴다. 일어난 직후 두통과 현기증으로 인해 주변의 상황을 파악하기는 커녕 한동안 아무것도 생각할 겨를이 없을 정도로 고생했던 파우스트와는 달리, 티파니아는 눈을 몇 차례 껌벅거리더니 이내 파우스트의 얼굴을 알아본 모양이었다. "어라, 파우스트? 대,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된 거지? 그리고 여기는 어디고?" "그야... 잘 모르겠군. 엘프들과 싸우던 도중 잠이 들었던 건 기억하지만, 그 이후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어." 티파니아의 질문에 무심코 대답하려던 파우스트는 잠시 머뭇거린 뒤, 다소 어색하게 굳은 표정으로 자신은 이 상황에 대해서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투로 대답했다. 물론 이것은 완전한 거짓말이었지만, 정신을 차리자마자 불안한 기색을 보이며 이것저것 질문해오는 티파니아를 보고 있으려니 파우스트는 그런 식으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후...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엘프들에게 붙잡힌 채 그들의 땅인 사하라로 끌려왔고, 어지간해서는 탈출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에 놓였는데... 사실 이렇게 된 건 내가 꾸민 계획에 의한 것이었지만, 솔직히 나도 앞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는 마땅한 대책도 없고, 거기에 하필이면 너까지도 같이 끌려오는 바람에 일을 그르칠지도 모를 지경이야... 라고, 이 녀석에게 대체 어떻게 말하라는 거야!' 파우스트가 티파니아에게 사실 그대로 이야기를 하기 곤란한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지금도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티파니아가 자신들이 엘프의 땅으로 끌려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얼마나 더 놀랄 것인가... 에 대해서 걱정했던 건 아니었다. 물론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티파니아는 지금보다 더 불안감을 느끼겠지만, 어차피 티파니아가 그 사실에 대해서 알아차리는 것은 시간문제였으므로 이는 어쩔 수 없이 감수하고 넘어가야 할 점이었다. 문제는 앞으로 마주하게 될 다른 엘프들이 보일 적개심에 대해서 티파니아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의 여부였다. 파우스트나 티파니아나 이곳의 거의 모든 엘프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했지만, 그래도 파우스트의 경우는 나은 편이었다. 파우스트는 어차피 처음부터 작정하고 잡혀올 생각이었던 이상 그러한 엘프들의 반응에 대해서 어느 정도 각오는 하고 있었고, 경험상 다수의 상대로부터 악의어린 시선을 받는 데에는... 익숙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경험을 한 바가 없지 않았다. 하지만 티파니아는 사정이 달랐다. 그녀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이런 곳으로 붙잡혀와서는 불특정 다수의 존재로부터 악의를 받아야만 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티파니아에게 결코 좋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거기에, 파우스트로서는 그러한 상황에 놓이게 될 티파니아가 이 장소에서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은 어디까지나 자신 뿐이라는 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방이 잠재적인 적으로 둘러싸인 상황만으로도 티파니아에게는 상당히 가혹한 처사인데, 그녀가 여기로 잡혀오게 된 이유가 바로 파우스트 자신이 의도한 바에 의한 것이었다는 점을 티파니아가 알게 되는 것은 상당히 곤란한 일이었다. 티파니아로서는 그러한 가능성에 대해서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 분명했으므로, 만약 이 일이 파우스트의 의도로 인한 것을 알게 된다면 티파니아는 그에 대해서 의혹을 품을 경우도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이다. 파우스트는 이 장소에서 티파니아가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상대인 만큼, 그에 대해서 의심을 품게 된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티파니아를 더더욱 불안하게 만들 공산이 컸다. 물론 파우스트가 굳이 엘프의 땅으로 오려고 했던 이유에 대해서 시간을 들여 설명을 한다면 티파니아의 의심을 푸는 것은 가능할 터였다. 하지만 이번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넬우얼로부터 전해들은 '세계의 멸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여기에 대한 설명은 안 그래도 초조해하는 티파니아의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키게 될 것이 분명했으므로 차라리 안 하니만 못할 이야기였다. 그나마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지에 대해서 확고한 계획이라도 세워져있다면 모를까, 이번 일은 파우스트가 '다른 일행에게 자세한 내용을 설명하며 설득하기를 포기할 정도'로 대책없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일단 사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버리면 아무리 파우스트가 앞으로 잘 될 거라고 최대한 허세를 부리며 티파니아를 구워삶는다 한들, 그에게 뚜렷한 계획이 없다는 사실은 행동으로 드러나게 될 것이 분명했으므로 의미가 없었다. 그럴 바에는 처음부터 여기에 대해서는 입을 싹 다물고 이야기를 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파우스트가 티파니아에게 자세한 사정을 설명하기가 꺼려지도록 만드는 요인은 따로 있었다. 이번 일에 대해서 처음부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더라도 결국 자신과 함께 티파니아까지도 여기로 오게 된 것은 '상정했던 것 이외의 상황'이었다는 것을 그녀가 알아차리지 못할 리가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티파니아가 인식하게 된다면 그녀는 스스로가 그저 걸림돌에 불과하다는 비관적인 기분에 잠기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아도 티파니아는 불안감에 떨고 있는 상황인데, 거기에 스스로를 짐으로 여기며 자학하기 시작하기까지 한다면 그 부정적인 시너지가 어떤 극단적인 방향의 결과를 초래할지 우려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내가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티파니아 녀석이 스스로 그러한 부분에 대해서 점차적으로 인식하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처음부터 그런 걸 이야기하는 건 바보같은 짓이지.' 사정이 이렇다보니, 파우스트는 티파니아에게 이번 일에 대한 내막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엘프들의 땅에 끌려왔다는 사실 만으로도 불안해하는 티파니아에게 더 이상 정신적으로 부담을 주는 것은 피해야 했던 것이다. '그렇긴 하지만... 후우, 솔직히 정말 난처하게 되었군. 솔직히 나 혼자 행동한다 하더라도 어떻게 될 지 모를 상황인데, 티파니아 녀석까지 일일이 신경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 목숨을 건 비밀임무와 아이 돌보기를 같이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니... 빌어먹을, 솔직히 이건 제약이 너무 심하잖아!' 파우스트는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해도 너무나도 방해요소가 많은 지금의 상황에 대해서 막막함과 짜증스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무리도 아닌 것이, 현재 파우스트가 처한 상황은 유일신을 믿는 종교인이라면 '신이 나를 시험하고 계신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난처한 일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물론 파우스트는 사실상 무신론자나 마찬가지였지만, 그렇다고 해도 신과 유사한 입장에 있다고 할 수는 있는 넬우얼로부터 이야기를 전해받은 것이었으니 별반 다르다고 할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파우스트가 자신이 처한 암울한 현실에 대해서 속으로 불평하며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있을 때, 티파니아가 그에게 불안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저, 저기... 자, 잘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우린 지금, 엘프들에게 끌려온 거겠지? 우리를 잠들게 만든 건 그... 엘프였을 테니까, 여기는 아마도... 아!" 이야기를 하던 티파니아는 문득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고는 흠칫거리더니, 더더욱 수심이 깊어진 표정으로 말했다. "아, 아마도가 아니라 역시나였어! 우린 정말로 엘프의 땅으로 와버린 거구나..." "갑자기 추측에서 확신으로 바뀌었잖아. 무엇 때문에 그렇지?" "지금 내가 입고있는 건... 엘프의 로브야. 어머니의 유품과 닮았어." "흐음..." 파우스트도 현재 티파니아가 입고 있는 옷이 '해골들의 저택'에서 사역마 소환 의식을 하려고 할 때 입고 있던 것과 다르다는 것은 알아차리고 있었지만, 그게 무슨 옷인지는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티파니아는 자신에게 입혀진 옷의 의미를 통해 그녀가 처한 상황에 대해서 확신하게 된 모양이었다. "이제... 우린 어떻게 되는 걸까?" "...글쎄, 하지만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어, 어째서?" 불안한 목소리로 물어온 티파니아에게 파우스트는 약간의 시간 간격이 있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투로 대답했다. 너무나도 시원스러운 말투였기 때문에 오히려 물어본 티파니아가 더 놀란 모양이었는데, 파우스트는 티파니아와 가까운 곳의 침대 곁에 걸터앉으며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적어도 엘프들은 우리를 결코 죽이려고는 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지. 엘프들이 나를 잡으려고 했던 건 '네 가지 넷'이 모이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 목적이었으니, 결과적으로 우리의 목숨은 보장되는 거잖아." "물론 그렇겠지만... 우리가 뭐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닐 테고, 또 계속 이렇게 붙잡혀있으면 다른 사람들도 곤란해 할 텐데..." "흥. 지금 당장이야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기는 하지만, 그래도 목숨이라도 붙어있다는 건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일단 살아만 있다면, 뭐가 어떻게 되든 다른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주어진다는 거니까 말이지." "그, 그럴까?" "그렇다니까." "으음..."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듯한 파우스트의 단정적인 어조에 티파니아는 뭔가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여전히 불안감이 어린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조금 전에 비하면 티파니아가 어느 정도 마음이 가벼워진 상태였다. 그러한 사실을 파우스트는 티파니아의 표정에 드러나는 시각적인 정보를 통해서, 그리고 그녀의 영혼이 품고 있는 부정적인 형태의 감정이 줄어들었다는 감각을 통해서 파악하고는 속으로 약간이나마 안도했다. '후우... 조금은 나아진 모양이로군. 그나저나, 이거 정말 못 해먹을 일이잖아. 티파니아 녀석이 나 말고는 의지할 존재가 없으니 나는 겉으로라도 어떻게든 될 것이라 확신하는 모습을 연출해야 하는데, 그건 내가 지금 상황에 대해서 느끼고 있는 감정과는 너무나도 괴리감이 크기 때문에 짜증스러울 뿐이고... 그렇다고 해서 내가 티파니아 녀석을 상대할 때 그러한 짜증스러움을 드러내면 저 녀석은 자신이 걸림돌이 될 거라고 자책할 게 분명하니까 그렇게도 못하고... 빌어먹을, 마치 그림으로 그린 것 같이 완벽한 부정적인 시너지의 연쇄작용이잖아! 짜증은 짜증대로 쌓이지만 그걸 풀 방도는 없고, 그렇다고 해서 일이 잘 풀릴 것 같지도 않으니... 제길.' 파우스트로서는 티파니아에게 '처음부터 세운 계획대로 행동하려고 했으나 그녀의 존재로 인해 수포로 돌아갔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차라리 '예상 밖의 사태이지만, 그래도 목숨이라도 붙어있으니 다행이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물론 결과적으로 보면 암담한 상황이라는 점이 변할 리가 없었지만, 그래도 상황이 점차적으로 악화되었다고 표현하는 것 보다는 앞으로 나아질 여지가 있다고 하는 편이 듣기에는 더 좋았던 것이다. ...물론 앞으로 자신이 티파니아라는 '짐덩어리'를 떠맡은 상태로 이곳에서 해야 할 일에 대해서 고심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로 골치가 아플 따름이었다. 거기에 티파니아가 단순한 짐덩어리가 아니라 '취급주의' 마크까지 붙었다는 점, 그것도 육체적인 면에서 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측면에서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랬다. '이제는 머리가 아프다기보다는 속이 쓰릴 지경이야... 이러다가는 조만간에 위에 구멍이 나버릴지도 모르겠군.' 그러던 차에, 두 사람이 있던 방의 문이 정중하지 못한 기세로 벌컥 열리면서 누군가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앗...!" "...!" 방으로 들어온 상대는 룩샤나였는데 상당히 갑작스러웠기 때문에 티파니아는 적잖이 놀란 모양인지 목소리를 높였고, 파우스트 역시 입밖으로 소리가 새어나가지는 않았지만 흠칫하고 말았다. 사실 파우스트는 골치아픈 일들로 인해 골머리를 썩이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살아있는 영혼의 기척을 통해 누군가가 이곳으로 오고 있다는 것 정도는 어렴풋하게 파악하고는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놀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영혼의 기척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현재 룩샤나의 차림새 때문이었다. 사실 딱히 차림새라고 말할 것도 없었는데... 왜냐하면 지금의 룩샤나는 목욕을 마친 뒤 젖은 몸을 타월로 닦는 상태로 들어왔던 것이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다른 옷은 전혀 걸치지 않고 있었다. "어머, 일어난 모양이네?" "꺄, 꺄앗...!" 룩샤나는 그 어떤 곳도 가리지 않으면서도 조금의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한다는 듯 너무나도 당당한 모습이었고, 오히려 그녀의 파렴치한 모습에 티파니아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파우스트 또한 생각같아서는 룩샤나로부터 고개를 돌린 채 외면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이는 파우스트가 굴곡이 심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흘끗 보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상대가 '여성'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을 정도로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고 있는, 아마도 루이즈와 동급으로 추정되는 룩샤나의 나신을 보는 것으로 인해 아름다운 요정을 순수한 시선으로 감상하는 것과 같은 심미안적인 감상에 눈을 뜬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해서 그 자신도 지금껏 인식하지 못했던 변태적인 성욕이 발동하여 부끄러움조차 잊어버리고 뚫어지게 바라보았던 것도 아니었다. '여기서 내가 시선을 돌리기라도 하면... 그건 저 룩샤나라는 녀석이 나를 얕보도록 만드는 계기가 될 거야! 그리고 내가 맥없이 업신여김을 당한다면 티파니아 녀석의 심리에도 별로 좋지않은 영향을 줄 테고!' 티파니아가 위축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나름대로의 근거가 있기는 했지만, 결국 가장 주요했던 이유는 상대에게 얕보이고 싶지 않다는 파우스트 특유의 오기였다. 사실 단순히 오기의 발로라는 점이 전부는 아니었고, '안 그래도 평점심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상대에게 비아냥을 당하는 것까지 감내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도 있었다. 물론 파우스트는 '이런 방면'에는 면역이 전혀 없었던데다 그가 가장 혐오하는 존재인 '친부가 했던 행위'를 연상시킨다는 점에 있어서 결코 마음에 들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룩샤나에게 무시당하고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일어나기는 조금 전에 일어났지. 그보다, 몇 가지 질문을 해도 될까?" "질문? 으음, 내가 먼저 물어보고 싶었는데... 하긴, 시간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좋아. 하지만 내가 대답할 수 있는 범위 내로 한정될거야." "그러지." "아, 참고로 내 이름은 룩샤나야. 잘 부탁해, 파... 파... 어라, 뭐였더라?" "이봐, 네녀석은 아직껏 내 이름도 모르는거냐?" "그치만 너희 야만인들의 이름은 외우기 어려운걸... 아, 맞아! 파시스트라고 했던가?" "파우스트다." "아쉬워라! 거의 맞았었는데..." "..." 파시스트라는 단어는 어디까지나 '이 자리에 있는 자들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세계'에서 사용되는 말이었기 때문에, 그 의미에 대해서 아는 자는 적어도 여기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파우스트는 왠지 모르게 룩샤나가 단순히 자신의 이름을 잘못 불렀을 뿐이라는 것 이상으로 불쾌한 기분을 받았다. 뭐라고 딱히 집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룩샤나로부터 굉장히 모욕적인 말을 들었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파우스트는 그저 자신의 시선을 최대한 룩샤나의 얼굴에만 집중한 채, 왠지 모를 불쾌감과 그녀가 알몸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조금도 신경쓰지 않는다는 투로 말했다. "일단 짐작은 하고 있는 부분이지만, 그래도 확인하는 차원에서 물어보기로 하겠어. 여기는 대체 어디지?" "여기? 내 집이야." "어이, 그런 식의 대답을 바라고 한 질문이 아니라는 건 알텐데?" "응? 이 정도면 이해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아? 어차피 엘프인 내가 사는 집이라면 당연히 '사하라'에 위치한 우리 엘프들의 나라, '네프테스'에 위치할 수밖에 없는걸." "그러니까 그런 부가적인 설명을 조금만 더 붙이는 정도의 수고만 하면 될 일이잖아." "에이, 귀찮은데..." "..." 여전히 조금도 몸을 가릴 생각은 하지도 않는다는 건 둘째로 치더라도, 자신의 질문에 대해서 몸의 물기를 닦으며 대충대충 대답하고 넘어가려는 기색이 가득한 룩샤나의 태도는 파우스트에게 있어서 사실상 도발이나 마찬가지였다. 일단 룩샤나에게는 그다지 심각한 수준의 악의가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그 정도는 아니라고 해도 그녀가 자신을 놀리려는 의도 정도는 있는 것 같았다. 어쨌든 먼저 짜증을 내는 건 전혀 좋을 거 없다는 생각을 한 파우스트는 일단은 최대한 온건하게 대응하기로 했다. "내가 묻는 질문에 조금이라도 더 성실하게 대답한다면, 나도 네 질문에 나름대로 성의를 표하기로 하지." "어머, 그래? 그렇다면야 나도 조금은 의욕이 생길지도 모르겠는걸." "나 참... 그러면, 다음 질문. 네녀석들이 우리를 납치한 뒤로부터는 얼마나 시간이 걸렸지?" "네 집에서 출발한 시점부터 감안하면 7일이 지났어. 실제로 우리 집에 도착한 건 어젯밤이었지만." "뭐야, 그렇다는 건 여기까지 오는 데 겨우 6일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거잖아?" 일전에 아함브라 성에 감금되었던 샤를로트를 구하러 갔을 때, 오를레앙 저택에서 출발한 일행이 아함브라 성 주변의 역참마을에 도착하는 데에는 1주일, 즉 꼬박 8일이 걸렸다. 그런데 이들 엘프들은 자신과 티파니아를 납치한 상태로 훨씬 더 먼 거리를 더 빨리 이동했다고 하는 것이니 파우스트로서는 어안이 벙벙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룩샤나는 별로 대단치도 않다는 듯 대답했다. "그게 놀랄 일이야? 이래뵈도 시간이 좀 지체된 결과였는데 말이야." "무엇 때문에 말이지?" "생각보다 빨리 너희들에 대한 수색 활동이 시작된 모양이더라고. 야만인들 주제에 제법이었다고. 덕분에 피해다니느라 제법 고생했는걸." "흐음..." 파우스트에게 있어 룩샤나의 이야기는 원래대로라면 안도할 수도 있었던 내용이었다. 만약 이들이 엘프들의 땅에 도착하기도 전에 붙잡히기라도 했다면, 그의 계획은 실행도 되지 못한 채 물거품이 되고 말았을 터였으니 말이다. 그렇긴 하지만 다소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만약 수색대가 조금만 더 유능했더라면, 엘프들로 하여금 티파니아를 포기한 채 '제 1의 목표'인 파우스트만 데리고 가도록 상황을 강제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부분이 그것이었다. '뭐, 솔직히 그건 내게 너무 형편이 좋은 생각인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솔직히 지금 내 입장이 너무 난처한 건 사실이니까 말이야. 나 혼자라도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인데, 거기에 티파니아까지 신경써야 한다니...!' 파우스트는 지금의 상황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자 급격하게 좌절감에 빠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그래도 그러한 감정을 억누르며 질문을 계속했다. "그럼 다음 질문. 나를 납치하려고 한 이유는 역시 온전한 '허무의 힘'이 부활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겠지?" "그렇지 뭐. 지금 너희 야만인들은 우리의 땅을 빼앗으려고 대대적으로 전쟁을 준비하고 있잖아? 사실 일반적인 야만인들이 쓰는 마법이나 무기 같은 건 별로 무섭지 않지만, 그래도 '악마의 힘'은 충분히 경계해야만 할 대상이니 말이야." "악마의 힘이라..." 지금 눈앞의 룩샤나 뿐만이 아니라 일전에 싸웠던 비다샤르, 그리고 자신을 납치하러 찾아왔던 알리도 모두 허무의 힘을 악마의 힘으로 부르고 있었다. 이는 그저 단순히 오랜 세월동안 적대시해왔던 상대를 악마라고 매도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파우스트는 간달브의 룬의 영향으로 꾸었던 꿈속에서 지금으로부터 6천년 전 엘프들이 실제로 악마들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이는 당시부터 존재했었던 데르플링거와 넬우얼의 이야기에서도 확인이 가능한 사실이었다. 특히 넬우얼의 이야기에는 이 세계를 만든 악마 군주 오로바스의 부하였던 시그나르가 브리미르의 힘을 노리고 있었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넬우얼 그 자식은 거기에서 이야기를 멈춰버렸어. 인간과 엘프가 왜 서로 적대시하게 되었고, 브리미르가 사용하던 허무의 힘은 도대체 왜 악마의 힘으로 불리우게 되었는지에 대한 중대한 부분을 빠뜨렸다고. 그냥 다 이야기하면 될 것을 왜 감추는 건지 원... 덕분에 내가 여기로까지 오게 되었잖아. 거기에 대한 내용을 인간 왕국들로부터는 얻을 수 없었으니 말이야. 애당초 이 세계의 인간들은 왜 자신들이 과거에 누구와 싸우고 있었는지도 모르고 있지? 역사 관련 서적을 뒤져봐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엘프와 적대시하고 있었다는 정도에 불과했다고.' 현재 이 세계의 인간들은 엘프와 인간이 서로 적대시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브리미르가 살던 당시인 6천년 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고 있었다. 어째서 그 당시에만 해도 적대적인 관계는 아니었던 인간과 엘프의 사이가 멀어지게 되었는가는 커녕, 자신들이 '바리야그'라는 집단과 종족의 존망을 건 싸움을 하고 있었다는 역사조차도 '말소'되어 있었다. 애당초 브리미르가 인간들 사이에서 칭송받았던 이유가 그 바리야그와의 불리한 싸움에서 큰 활약을 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너무나도 이상한 점이었다. '하지만, 아마도 엘프 녀석들은 6천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 아마 알고 있을거야. 자세한 사정이야 어쨌든 악마들이 브리미르의 힘을 노렸다고 하니 뭔가 농간을 부리기는 했을 것이고, 그걸로 인해 인간과 엘프의 사이가 멀어지고 브리미르가 사용한 허무의 힘이 악마의 힘으로 불리우게 되었다...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아귀가 들어맞는 것 같단 말이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파우스트는 자신은 아무 것도 모른다는 듯한 얼굴로 금빛을 띄는 긴 머리카락을 타월로 닦고 있는 룩샤나에게 질문했다. "전부터 마음에 걸렸던 건데, 왜 너희 엘프들은 허무의 힘을 악마의 힘이라고 부르는 거지? 물론 종족이 다르고 살아온 환경도 다르니 하나의 무언가에 대해서 서로 다른 명칭을 붙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만, 그런 것 치고는 지나치게 악의어린 경계심이 느껴진단 말이지. 뭔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건가?" "뭐야, '악마 지킴이'면서 그런 것도 모르는 거야?" "내가 그걸 어찌 알겠어. 난 허무의 사역마로 소환되기 전에는 허무의 힘에 대해서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고, 이 세계의 역사에 대해서도 완전히 문외한인 인간이었다고." "어머, 그래?" 아무래도 파우스트의 말은 룩샤나에게 있어서 '자기 자신의 일도 모르는 것'으로 여겨진 모양인지, 그녀는 다소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그렇지만 나도 자세한 건 몰라. 하지만 뭐라더라... '악마를 대량으로 소환'해서 이 세계에 재앙을 가져올 뻔 했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던 것 같기는 하지만 말이야." "...호오?" 룩샤나의 이야기를 들은 파우스트는 무척이나 혼란스러운 기분에 빠졌다. 넬우얼이 브리미르를 가리켜 '마법으로 한 세계와 다른 세계를 연결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지닌 마법사'라고 표현했던 것을 생각하면, 시그나르가 브리미르의 능력을 그러한 방향으로 사용할 꿍꿍이였다는 것 자체는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이 노리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로 일어났다면... 그러니까, 지옥의 악마가 이 세계에 소환된 적이 있다면... 이 세계는 이미 6천년 전에 지옥에 그 존재가 발각되었을 터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세계는 지옥과 천상계 중 그 어느 곳에도 발각되지 않았고, 그 이후로도 6천년 동안이나 지속되고 있어. 넬우얼 또한 천상계와 지옥에 발각된 세계는 가장 최근에 생긴 세계... 아마도 내가 살던 생츄어리 뿐이라고 말했었잖아. 그럼... 이 모순은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이야기의 앞뒤가 맞지 않잖아. 으음, 아무래도 좀 더 정확하고 자세한 정보가 필요할 것 같은데...' 아무래도 룩샤나는 6천년 전의 역사에 대해서는 잘 아는 바가 없는 모양이었으므로 더 이상의 자세한 내막에 대해서 듣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하지만, 아마 그녀보다 역사에 대해서 조예가 깊고 관심을 가지고 있는 엘프로부터라면 조금 더 제대로 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뭐, 하지만 내게 그 이야기를 해줄 엘프가 누구일지도 모르겠고, 설령 그 이야기를 듣는다 한들 지금의 상황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아무튼, 이제 여기에 대한 내용은 적당히 마무리를 지어야겠어. 이 녀석에게는 이제 더 얻어낼 것도 없을 것 같으니까 말이야.' 룩샤나로부터 들을 수 있는 6천년 전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는 대충 다 들었다고 판단한 파우스트는 자연스럽게 다른 화제로 넘어가기로 했다. "그래서 하필이면 나를 붙잡으려고 했단 말이지?" "맞아. 잘은 몰라도 앞으로 싸우게 될 지도 모를 상대로부터 터무니없는 마법으로 공격을 당할 가능성은 없애는 편이 현명하잖아? 단 한 명이라도 빠지면 그 굉장한 힘은 부활하지 않는다며? 하핫. 정말이지, 너희 야만인들도 진짜 번거롭고 불편하겠어."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겠군. 그 힘을 악용해서 큰 일을 저지르려는 놈들이 예나 지금이나 많은 모양이라서, 어쩌다보니 당사자가 된 내 입장에서는 귀찮아 죽을 지경인데 말이야." "어머나, 왠지 남 일처럼 말하는 느낌이네. 어차피 너희 야만인들은 우리의 땅을 침략할 생각이잖아. 남이 사는 땅을 멋대로 성지라고 부르며 이를 수복하기 위한 성전을 벌이겠다느니 어쩌니 하지 않았었어?" "아무래도 지금은 그렇게 되는 쪽이 대세로 굳어진 모양이긴 한데, 솔직히 누가 좋아서 전쟁 같은 것을 일으키고 싶겠어? 하지만 대융기와 같은 인간의 생존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으니 다들 불안해하고 있고, 그러한 심리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선동하는 놈들이 높은 자리에 있으니 다른 사람들도 거기에 이끌리고 있을 뿐이야. 달리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모두는 기꺼이 거기에 따르겠지." "흐음..." 전쟁 같은 건 바라지도 않는다는 파우스트의 말에 룩샤나는 이번에도 조금 의외라는 듯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파우스트가 질문을 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나를 잡으려고 했지?" "그야 당연하잖아? 다른 악마나 악마 지킴이는 다들 왕궁에 꼭꼭 숨어있으니 접근하는 것도 까다로운걸. 그에 비하면 너를 노리는 편이 가장 용이했다는 거지." "과연... 납득할 만한 이유로군." "그런데 너희 야만인들은 왜 네게 호위를 붙이지도 않았어? 한 명이라도 결원이 생기면 악마의 힘이 부활하지도 않는다면서? 그러니 넌 야만인들 입장에서도 꽤나 중요한 인물이었을텐데, 왜 그런 녀석을 제대로 지키지도 않고 있었을까? 정말이지, 너희 야만인들은 미련하다니까." "..." 룩샤나는 아까부터 은근히 야만인 야만인 거리면서 성질을 긁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러니 파우스트도 생각같아서는 자신이 잡혀온 것이 어디까지나 그 나름대로의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져준 것일 뿐이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그런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 지금 그의 곁에는 여전히 맨몸을 드러내고 있는 룩샤나의 파렴치함을 견디지 못한 채 고개를 돌리고 있는 티파니아가 있었던 것이다. '후우... 원래대로라면 나를 이겼다면서 기고만장할 것이 분명한 이 녀석이나 알리 자식에게 내가 져줬다는 사실을 알려주며 한 방 먹여줄 생각이었는데, 이래가지고는 그 이야기는 계속 봉인해야만 하잖아...' 파우스트가 비록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영 불쾌한 기분에 빠져있을 때, 룩샤나가 조금 전 보다는 장난기가 줄어든 표정으로 말했다. "사실 노리기 쉬웠다는 점 이외에도... 내 숙부님께서 네게 별도의 관심을 보이고 계시기도 했어." "숙부? 혹시 비다샤르를 말하는 건가?" "맞아. 넌 일전에 숙부님과 싸워서 이긴 적이 있었지? 비록 적인데다 '악마의 힘'보다도 더 악마같은 불쾌한 마법을 사용하기는 해도, 그 수완이나 동료를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그 먼 곳까지 찾아왔다는 점에 대해서는 높게 평가하셨거든. 뭐, 그 때문에 여기까지 오는 동안 네게는 좀 특별히 강한 수면 주문을 걸었지." "..." 룩샤나에게서 전해들은 비다샤르의 자신에 대한 평가에 파우스트의 얼굴이 약간 굳어졌다. 비다샤르가 자신을 높게 평가했다는 부분에 대해서 약간 낯부끄러운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악마의 힘보다 더 악마같다는 이야기가 더 신경쓰였다. 물론 자신의 마법이 다른 이들에게 있어서 불쾌감을 준다는 것은 모르지 않았지만, 이런 식으로 지적을 받으면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나저나, 나에게 특별히 강한 수면 주문을 걸었다고? 그것 때문에 내가 티파니아 녀석보다 일어난 이후에 더 고생을 했다는 건가? 이런이런...' 여러가지로 착잡한 기분이 들었지만, 파우스트는 그러한 감정을 애써 억누르고는 다른 중요한 질문을 했다. "자, 그럼 너희 엘프들은 붙잡은 우리를 대체 어떻게 할 셈이냐?" "딱히 어떻게도 안 해." "어떻게도 안 한다고?" "그래. 악마는 죽여도 다시 태어나고, 악마 지킴이는 죽어도 새로 소환하면 그만이잖아. 그러니 우리로서는 너희들이 여기에서 살아있어주지 않으면 곤란하다구. 앞서 말했지만, 우리 엘프들에게 있어서 너희 야만인들을 경계할 구석은 어디까지나 악마의 힘 뿐이니까." "자신만만하군. 그러면 우릴 대체 얼마 동안이나 붙잡아둘 생각이지?" "글쎄... 거기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듣지 않아서 잘 모르겠는걸. 하지만 아마도 평생동안이 아닐까?" "평생동안?"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이 높지 않겠어? 어느 정도 길게 잡지 않으면 기껏 납치한 의미가 없잖아." "...읏." 룩샤나의 입에서 평생동안이라는 말이 언급되자, 곁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티파니아가 앓는 소리를 내며 고개가 푹 숙였다. 아무래도 평생동안이라는 말에 상당히 놀란 모양이었다. 그러한 티파니아의 반응을 확인한 룩샤나는 그녀의 곁으로 슬쩍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에이,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너희들이 얌전히만 있으면 우린 아무런 위해도 가하지 않을 거라니까? 정말로 평생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그렇다고 하면 너희들에 대한 대접도 섭섭하지 않게 잘 해줄거라고. 우리로서는 가능하면 너희들이 여기에서 최대한 오랜 수명을 누리고, 그 동안에 야만인들의 땅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말썽을 부리지 않는 편이 나으니까 말이야. 최소한 먹고 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거라구." "히익!" 룩샤나는 제딴에는 티파니아를 안심시키려고 한 모양이었지만, 티파니아는 말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타월을 걸친 것 이외에는 몸을 전혀 가릴 생각조차 하지 않는 여자가 자신의 몸에 손을 댔다는 사실 만으로도 불안한 기색이 역력해보였다. 성적 소수자를 차별하자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일반적으로 생면부지의 동성이 벌거벗은 채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에 대해서 긴장하고 경계하는 것은 이상한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야... 아주 파격적인 노후보장이로군." 한편, 다소 어처구니가 없다는 목소리를 낸 파우스트는 양손을 깍지끼어 자신의 머리 뒤에 대더니 이내 그대로 침대에 등을 대고 누워 천장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러한 파우스트의 동작은 언뜻 보기에는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듣고서 만사가 다 귀찮다는 듯한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었지만, 그 실상은 달랐다. 여전히 나체인 룩샤나가 파우스트의 바로 옆에 앉은 티파니아의 곁에 다가왔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이전까지는 파우스트와 룩샤나의 거리가 조금 떨어져있었기 때문에 시선을 그녀의 얼굴에만 향하도록 할 수 있었지만, 룩샤나가 티파니아의 바로 곁에 온 뒤로는 얼굴을 부자연스럽게 들어올리지 않으면 각도상 룩샤나의 얼굴 이외의 다른 부분을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결국 파우스트는 부자연스럽게 고개를 드는 것 보다는 차라리 드러눕는 것으로 합법적(?)으로 시선을 회피하려 한 것이다. 물론 다시 룩샤나와 대화를 하게 된다면 시선을 그녀 방향으로 향해야겠지만, 일단 드러눕게 되면 각도상 룩샤나의 얼굴에만 시선을 줄 수 있었다. 잠시 대화가 멈추고 천장을 바라보기 시작한 파우스트의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하얀 천장이었는데, 자세히 보니 단순히 하얗게 칠한 것이 아니라 표면이 백자처럼 매끄럽게 빛나고 있었다. 이는 천장 뿐만이 아니라 그와 연결된 벽 전체가 마찬가지였는데, 이러한 질감을 내기 위해서는 집의 내벽 전체에 흙을 바른 뒤 유약을 발라 뜨거운 공기로 한 번에 구워내지 않으면 불가능할 것 같았다. 작은 도자기를 제작할 때에도 여러 개의 불량품이 나온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집안 전체의 벽면을 한 번에 이렇게나 고르게 만들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마법과 기술력이 필요할 터였다. 이는 처음에 파우스트가 있던 창고에는 온갖 잡동사니들로 가득했고, 이 방에 와서는 티파니아로 인한 고민으로 인해 이러한 점에 대해서는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기 때문에 알아차릴 수 없었던 부분이었다. '거 참, 이런 집 한 채에도 쓸데없을 정도의 고급 기술이 동원되었다니... 그러고보니 그 요르문간트라는 괴물도 엘프의 기술력이 동원되었던가? 이런 정도니까 룩샤나 녀석이 인간의 무기에 대해서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것도 이해가 되는군. 물론 생츄어리도, 이 세계도 아닌 다른 세계에는 이보다 더한 무기가 있기는 한 모양이지만... 어쨌든 이 세계의 틀안에서 본다면 가히 절대적이라고 봐도 되겠지?' 파우스트는 종례의 전투와는 달리 무기의 수준이 현격하게 차이가 나는 두 세력의 싸움은 학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요르문간트에 삽시간에 몰살당했던 로말리아 군의 수비대로부터, 그리고 그런 요르문간트를 너무나도 간단히 처리했던 쾨니히스티거로부터 확실하게 느꼈다. 그리고... 아마 인간과 엘프가 총력전을 벌인다면 비록 인간의 숫자가 더 많다고 해도 싸움의 양상은 엘프들의 일방적인 학살극이 될 것이 분명하리라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파우스트로서는 넬우얼에게서 들은 세계의 멸망 뿐만이 아니라 그 전조가 될 성전 또한 될 수 있으면 막고 싶었지만... 그 해결방안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진짜 나보고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후우, 당장에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만, 역시 골치아픈 일이로군. 그렇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상황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정보가 모자라니까, 일단은 끈기를 가지고 기다릴 수 밖에 없겠군.' 파우스트는 지금이라도 당장 한숨을 내쉬고 싶은 기분을 억지로 억누르면서 룩샤나와의 대화를 계속했다. "그런데, 그렇게 꼭 붙잡아야 할 상대를 너무 풀어두는 거 아냐? 여기는 그저 일반 가정집일 뿐이고, 우리에 대해서도 딱히 별다른 구속이 되어있지는 않잖아. 내 나이프도 압수하지 않았고 말이야." "상관없어. 어차피 여기 주변은 사막이라 밖에 나간다 한들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말라 비틀어질 뿐이야. 그리고 이 집은 내가 정령들과 계약하고 있는 장소이기 때문에, 나를 공격하려 든다면 그 즉시 정령의 힘이 너희들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릴거야." "...참 빨리도 알려주는군. 그런 이야기는 진작에 하라고." "알려줬다는 사실에 대해서 감사하는 게 어때? 그리고 너희들은 내가 좀 억지를 부려서 여기로 데려온 거야. 원래대로라면 일단은 '카스바'의 지하감옥에 구금되는 게 먼저였을걸?"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감옥이나 여기나 별 차이는 없어보이는데." "에이, 그래도 장소의 분위기라는게 있잖아. 아무래도 지하감옥보다는 너희 야만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물건들 덕분에 친숙한 느낌이라도 드는 내 집이 낫지 않을까?" "친숙한... 느낌?" 파우스트는 자신이 눈을 떴던 이 방 옆의 창고안의 상황을 떠올리며 표정을 살짝 일그러뜨렸다. 분명히 창고안의 물건은 인간들이 자주 사용하는 것이었지만, 그것들의 배치는 아주 좋게 표현하면 일종의 초현실주의적인 예술이었지만... 일반적인 감성에서 바라보면 그냥 정신병을 앓고 있는 인간의 편집증의 발현에 불과한 정도였다. "친숙하기는 무슨... 물론 거기 있는 것들은 인간들이 사용하는 물건이 맞지만, 그걸 원래 용도를 깡그리 무시한 채 기괴하게 배치해놓은 걸 보니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고. 아마 인간을 그 창고안에 하루 정도 가둬두면 미쳐버릴지도 모를 정도였지." "엑? 그럴리가! 이상하네, 난 나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인 거였는데..." "흥, 차라리 몇 가지 가구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는 이 방이 훨씬 정신건강에 좋을 것 같다고. 솔직히 너도 자기 방에까지 저런 식으로 아수라장을 만들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서 여기는 깨끗이 비워둔 거 아니야?" 파우스트는 나름대로 룩샤나를 비꼬는 의미에서 그렇게 말했던 거였지만, 그녀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예상 외였다. "여긴 내 방 아닌데?" "뭐?" "여긴 알리가 가끔씩 찾아올 때마다 빌려주는 방이야. 근데 걔는 내가 방에 야만인들의 물건을 잔뜩 들여놓는 걸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라서... 여차저차한 끝에 이 방에는 두지 않기로 했어." "그렇다는 건 설마... 이 방을 제외한 이 집의 나머지 방은 다 저 창고처럼 아수라장이라는 거냐?" "아수라장이라니... 뭐, 아무튼 일단은 비슷한 느낌이야. 그나저나... 대체 뭐가 문제였던 걸까? 으음, 역시 야만인들의 감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야만인들의 의견을 물어봐야 하는 거겠지? 지금 거기에 대해서 물어봐도 될까?" "미안하지만 아직 내 질문은 다 안 끝났어." "으읏..." 창고에 있던 물건의 종류를 생각하면 거기에 대한 질문들이 잔뜩 쏟아질 것은 자명했다. 룩샤나의 고집에 일일히 응해주고픈 생각은 없었고, 거기에 아직 물어볼 것이 몇 가지 더 남았으므로 파우스트는 룩샤나의 질문공세를 사전에 차단했다. "나를 데리고 온 이유가 뭔지는 이해했다만, 대체 티파니아는 왜 데리고 왔지?" "티파니아... 아, 이 하프엘프의 이름이구나?" "히야악!" 룩샤나가 자신의 어깨에 손을 올리는 것 만으로도 처량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던 티파니아는 룩샤나가 자신을 뒤에서부터 끌어안아버리자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룩샤나는 그러한 티파니아의 반응을 오히려 귀엽다고 여기는 듯한 모습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난 이 아이에게 매우 관심이 있어! 하프엘프는 그 자체로도 매우 보기 드문 사례이기도 하고, 야만인을 연구하는 나에게 있어서는 일종의 공통분모를 가지는 셈이기도 하니까! 그나저나, 옷을 갈아입혔을 때에도 생각했던 거지만 진짜로 엄청 크네. 이런 가슴은 엘프에게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건데..." "으읏, 제 옷을 갈아입혔...다구요?" 다 벗은 몸으로 자신을 끌어안는 룩샤나에 대해서 불안해하던 티파니아는 그녀가 자신의 옷을 갈아입혔다는 말을 듣자 기겁하는 목소리를 냈지만, 이에 대해서 룩샤나는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그럼 나 말고 누가 갈아입히겠어? 다른 사내녀석들에게 그런 걸 부탁할 수는 없잖아?" "그, 그렇긴 하지만..." 룩샤나의 말은 정론이라면 정론이었지만, 일부러인지 자각이 없는 것인지는 몰라도 뭔가 '동성애'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그녀가 하는 말이었으므로 티파니아로서는 도저히 안심이 되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룩샤나의 행동은 점점 더 노골적으로 변해갔다. "혹시 안에 뭔가 집어넣어 부풀리기라도 한 거 아냐? 으음, 가능성이 없지는 않을 것 같은데? 야만인들에게는 그런 수술도 있을 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자, 그럼 연구 차원에서 어디..." "으엣?" 등 뒤에서 티파니아를 끌어안은 채 그녀의 가슴을 내려다보던 룩샤나는 기어코 거기에 손을 뻗더니 주무르기 시작했다. "꺄, 꺄아악-! 뭐, 뭐 하는 건가요?!" "으음... 딱히 이물감 같은 건 느껴지지 않는데? 그렇다면 이건 역시 진짜라는 거야? 우와..." "그, 그만...!" "작작 좀 해! 아까부터 다른 사람 앞에서 벌거벗은 채 뻔뻔스럽게 돌아다닐 때부터 좀 마음에 안 들었는데, 이제 적당히 좀 하지 그래?" 분위기가 점점 더 티파니아에게 있어 가혹(야릇?)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하자, 결국 아까부터 계속 딴죽을 걸지 않으려 노력했던 파우스트도 이제 더는 못 견디겠다는 듯 몸을 일으키며 언성을 높였다. 하지만 룩샤나는 오히려 장난스러운 표정을 얼굴에 가득 띄운 채 기다렸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어머, 역시 내가 벗고 있었던 것이 줄곧 신경쓰였던 거야? 실은 대체 언제쯤 지적할까 싶어서 일부러 계속 그러고 있었어!" "역시 일부러였군!" "하지만 당황하지도 않고 별 다른 반응도 없길래 혹시 남색 취향의 성벽을 가진게 아닌가 싶었는데..." "뭐라고?! 대체 누가 남색가라는 거냐! 오히려 네 쪽이 여색가에 노출광 변태가 아니고?" "무슨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는 거니? 내겐 약혼자인 알리가 있는걸." "그럼 티파니아의 가... 티파니아에 대한 희롱은 대체 뭐였지?" "희롱이 아니야. 단지 나는 학자로서 저 가슴이 진짜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려는 차원에서 행한 정당한 실험이었을 뿐이라구!" "대체 어디가 정당한 실험이냐? 되도않는 궤변 늘어놓지 마! 게다가 네 표정은 명백히 즐기는 듯한 기색이었다고!" "그건 어디까지나 탐구심을 충족시키는 희열에 의한 것이었지, 너 같은 야만인의 망상에서나 일어날법한 변태적인 게 아니었는걸." "뭐, 뭐가 어쩌고 어째? 누가 변태라는 거야!" 처음에 파우스트는 티파니아에게 가해지는 룩샤나의 행동을 저지하기 위하여 룩샤나를 적당한 선에서 다그치는 중재역을 수행하기 위해서 여기에 끼어들었다. 하지만 룩샤나로부터 '게이 의혹(...)'을 받은 뒤부터는 급격하게 페이스가 무너지며 감정적으로 대응하고 말았다. 파우스트는 일반인이라면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모멸에는 차라리 익숙한 편이었지만, 아무래도 '성적인 방면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괴멸적으로 내성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라스마의 사제에 귀의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소외되고 음울한 과거를 가진 이들이 많았다. 그렇기에 그들은 라스마의 사제로서의 힘을 얻기 위해 거기에만 필사적으로 몰두하는 경향이 강했고, 이렇게 이상할 정도로 학구열에 불타오르는 주변 환경에서 생활해온 파우스트 또한 자연스럽게 '금욕'적인 생활에 익숙해졌다. 거기에 라스마의 사제들이 생활했던 장소가 외부와 철저하게 고립된 동부 정글지대에 위치한 지하 도시였기 때문에 별도의 '쾌락'을 추구할 여지는 사실상 없었고, 이는 성적인 분야 역시 마찬가지였으므로 파우스트는 여기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무지몽매했다. 거기에다 파우스트의 인생이 뒤틀려버리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바로 그의 친부의 무절제한 성욕으로 인한 일이었던 만큼, 파우스트로서는 여기에 대해서 극도로 부정적인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제길...! 나도 모르게 발끈해버리고 말았군. 하지만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들으면, 마치 내가 그 빌어먹을 영주 자식이랑 동일선상에 놓이는 것 같아서 화가 치민다고! 하지만 가급적 자제하지 않으면 곤란한데...' 결국 파우스트는 이야기의 방향이 점점 자신에게 난처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거기에 자신이 발끈해버렸다는 것으로 인해 조금씩 당혹스러운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파우스트로서는 그냥 생각같아서는 적당한 선에서 이야기를 마무리짓고 싶었으나, 아무래도 룩샤나가 그걸 원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변태 맞잖아. 내가 지금껏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있었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지적도 하지않은 채 나의 이 가련하고 아름다운 육체를 시간(視姦)하며 즐기고 있었지?" "..." 계속 상대의 조롱에 반박하기만 해서는 상대로 인해 페이스가 말려들기만 할 뿐이었으므로 파우스트로서는 스스로를 다스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바로 그 직후 룩샤나로부터 이러한 중상모략을 받게되자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버릴 정도의 분노를 느꼈다. 다른 사람이라면 '농담'으로 웃어넘길 수 있는 말이었지만, 파우스트에게 있어서는 그가 가장 혐오하는 인간과 동일시하는 수준으로 받아들여지는 말이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정말로 폭발할 뻔 했지만, 그래도 파우스트는 필사적으로 자제심을 발휘하여 분노를 억눌렀다. 물론 그 영향으로 인해 언동이 공세적으로 바뀌기는 했지만 말이다. "크크큭, 이제보니 변태일 뿐만이 아니라 답이 없을 정도의 중증 나르시스트이기도 하잖아? 뭐,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아무래도 세상의 모든 남자들이 다 네녀석에게 매력을 느낄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천만에. 내가 아무런 지적을 하지 않았던 건 어디까지나 너로부터 안쓰러움을 느꼈기 때문일 뿐이야." "뭐, 그게 무슨 의미지?" "눈에 차기는 커녕,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금하지 못하게 만들 정도로 빈약한 네 몸매를 보고 있으려니,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거든. 난 그저 거기에 대해서 지적하는 식으로 화제를 삼다보면 네녀석이 모멸감을 느끼게 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특별히 배려하며 묵인하고 있었을 뿐이야." "어머나?" "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미리 지적하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르겠군. 진작에 이야기를 했더라면 네녀석도 조금은 수치심이라는 것에 눈을 뜨고서 스스로를 부끄럽게 만들지도 않았을테고, 티파니아에게도 피해를 끼치지 않았을텐데 말이야." 파우스트는 어떻게서든 대화의 흐름을 바꾸고 주도권을 쥐기 위해서 이런 소리를 늘어놓기는 했지만, 실은 그 자신이 생각해도 이게 대체 뭔 헛소리냐 싶을 정도의 기분이기는 했다. 애당초 파우스트는 외모 같은 것으로 누군가를 평가하는 행위 자체를 무척이나 싫어했으며, 거기에 가슴의 크기에 관한 성적 기호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한 적도 없었으므로 이런 말을 입에 담는 스스로에 대해서 자괴감을 느낄 정도였을 뿐만이 아니라... 어째서인지 루이즈에 대한 미안함까지도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은 일단 어떻게든 말을 둘러대려고 하다보니 떠오른 게 룩샤나의 몸매가 루이즈와 동급(물론 순간적으로라도 맨몸을 보고 말았던 룩샤나와는 달리, 루이즈는 직접 본 적이 없지만...)이라는 점과, 루이즈가 이따금씩 자신의 가슴이 작다는 것에 대해서 신경쓰고 있는 듯한 발언을 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파우스트의 이 말은 룩샤나에게 있어 별로 효과가 없었고, 오히려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파우스트를 난처하게 만들 뿐이었다. "흐흥, 그래? 아무래도 너희 야만인들은 가슴의 크기가 큰 쪽을 좋아하는 모양이구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기호이긴 한데... 요컨데, 넌 이 티파니아라는 아이처럼 가슴이 무지막지하게 큰 게 좋은거야?" "에엣?" "...!" 자신이 가슴이 작다는 식으로 파우스트가 시비를 걸자, 룩샤나는 그녀와 완전히 대비되는 입장에 위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티파니아를 걸고 넘어졌다. 문제는 그 이야기를 들은 티파니아가 순간적으로 흠칫하더니, 다음 순간부터 고개를 들고는 파우스트에게 물끄러미 시선을 주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요컨데, 파우스트가 뭐라고 대답할 것인지에 대해서 신경을 쓰고 있다는 의미였다. 파우스트로서는 안 그래도 이야기하기에 껄끄러운 화제에 대해서 순식간에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는 상대가 두 명이 되어버리자, 파우스트로서는 왠지 죽을 맛이었다. '이런 빌어먹을... 대체 이야기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어버린 거지?' 일단 룩샤나가 가슴이 작다는 것을 단점이랍시고 걸고 넘어진 이상, 파우스트로서는 티파니아를 끌어들인 룩샤나와 기싸움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그 대항점이라고 할 수 있는 티파니아의 가슴을 칭찬(?)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건 가뜩이나 이런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무척이나 버겁게 느껴지는 파우스트에게 있어서 정신적인 고문이나 마찬가지였고, 또한 그 뒷감당이 염려되기도 했다. 지금 당장의 말싸움이야 어찌되었든, 나중에 티파니아와 단 둘이서 대면해야 할 상황을 생각하면 정말로 죽을 맛이었던 것이다. 행여나 티파니아에게 '자신이 그녀의 가슴을 노리고 있다'는 식의 터무니없는 오해를 사기라도 한다면... 자신이 그런 취급을 당하는 것 자체가 파우스트로서는 심각한 수준의 모욕이자 굴욕이었을 뿐만이 아니라 공연한 이야기로 티파니아의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말았다는 자괴감까지 빠지게 될 것이 분명했다. 결국 뭐라고 대답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짧은 시간동안 고심하던 파우스트는 잔뜩 구겨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크, 크기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잖아. 사람의 매력은, 그런 것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니까..." 이건 사실상의 항복 선언이나 마찬가지였다. 파우스트로서는 이런 주제를 가지고 열을 올리는 짓은 심리적으로나 생리적으로나 거부감이 들었기 때문에 더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다는 의지도 나오지 않았고, 거기에다 가급적이면 티파니아에게 신뢰감을 줌으로써 그녀를 불안하지 않도록 해야 할 자신의 입장을 생각하면 나중에 피차간에 고개를 들지 못할 이야기를 계속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되어버린 건 대화의 주제와 대화 상대가 파우스트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상성이 맞지 않았던 탓이었다. 애당초 파우스트는 이런 화제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 자체를 극도로 꺼리는데다 이야기를 듣는 것 만으로도 정신적으로 피로감을 느낄 정도였는데, 그에 반해서 룩샤나는 원래부터 성격이 대범한데다 파우스트를 '수치심을 느낄 대상이 아니다'라고 판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네 몸에 대해서는 어떠한 감흥조차 들지 않는다는 건 사실이야." 파우스트는 여전히 남은 오기로 그런 이야기를 덧붙였지만, 룩샤나는 짓궂은 웃음을 입가에 띄우며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아하하하, 역시나. 아까 전에 내가 이 티파니아라는 하프엘프의 가슴을 주무른다는 표현조차 차마 입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정정했을 때부터 짐작하고는 있었지만, 역시 이런 이야기는 질색이었구나?" "..." "그런데도 이런 주제를 가지고 무리하면서까지 내게 계속 말싸움을 걸다니, 어지간히 지기 싫었던 모양이네?" "...그쯤 하지 않을래?" 파우스트는 완전히 지쳐버린 목소리를 내며 고개를 푹 숙인 뒤, 그대로 양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감싸쥐었다. 결국 말싸움에서 졌다는 것도 굴욕적으로 자존심이 상했지만, 평소라면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것조차도 부끄러워할 주제를 가지고 열을 올리고 있었던 자기 자신이 부끄러웠다는 점이 더 크게 작용했던 것이다. 사실상 전의상실이나 마찬가지였지만, 룩샤나는 그렇게 고개를 숙인 채 침대에 걸터앉은 파우스트의 정면에 서서 계속 말을 걸었다. "후후후, 분하니? 하지만 이 누나는 겉보기에는 어떨지 몰라도 너보다는 나이도 많고, 너처럼 다른 부분에서는 진지한데 유독 이런 주제에 관해서만 약해지는 녀석의 상대도 제법 오랜 시간동안 해왔거든." "그거, 혹시 알리 녀석을 말하는 거냐?" "맞아, 그런데 나와 계속 이야기를 할 거면 고개를 들고 눈을 똑바로 마주보며 하는 게 어때?" "..." 누군가와 이야기를 할 때에는 서로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이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었지만, 지금의 현재 룩샤나가 하는 말은 터무니없는 소리에 지나지 않았다. 침대에 걸터앉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상대의 앞에 전라로 당당히 선 채로 고개를 들라는 건, 각도상 필연적으로 터무니없는 부위가 얼굴보다도 시야에 쉽게 들어오게 된다는 뜻이니 말이다. 이 지경까지 왔는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신을 놀리고 있는 룩샤나에 대해서 파우스트는 짜증스러움을 금할 길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있었다. 오기를 발동해서 고개를 들어본들 상대인 룩샤나가 비상식적일 정도로 수치심이 없었으므로 결국 얼굴을 붉히게 되는 건 파우스트가 될 터였고, 그건 그거대로 약점을 더 잡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결국 파우스트는 치욕과 분노로 몸을 떨며 뒷목을 움켜쥐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직 룩샤나에게 물어볼 말이 하나가 남은 상태였지만, 지금과 같은 상태에서는 도저히 물어볼 엄두도 낼 수 없었다. 바로 그 때, 룩샤나가 파우스트의 머리에 손을 뻗고는 정수리를 부드럽게 쓰다듬기 시작했다. "...지금 뭐하는 거지?" "으음... 사과?" "허?" "아하하... 그게 말이지, 실은 네 반응이 너무 재미있었다고나 할까, 살짝 귀여웠다고나 할까... 아무튼 놀려먹는 재미가 있다보니 그만 열중한 나머지 그만... 내가 생각해도 좀 심했던 것 같아. 알리에게도 자주 잔소리 듣는데 말이야." "..." 그 이야기를 들은 순간, 파우스트는 알리라는 잘 알지도 못하는 남자 엘프에 대해서 동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괴짜에다 자기가 관심을 가지는 분야에 대해서는 광적으로 파고드는 마니악한 성향에, 자기 고집대로 남에게 무리한 것을 부탁하면서도, 일단 일이 마무리되면 상대를 신경써주며 뒷일을 수습하는 사람... 아니, 엘프가 룩샤나였다. 그러다보니 정말로 곁에 있기에 피곤한 성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그녀에게 반해버린다면 고생은 한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나중에 찾아오는 미소어린 배려만으로도 다시금 그녀의 무리한 부탁을 들어주게 되는 순환과정을 거쳐가며 호구(...)의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룩샤나의 이 행동으로 인해 파우스트도 조금은 기분이 진정되기 시작했다. 물론 파우스트의 경우 알리와는 달리 룩샤나의 이러한 행동에 마음이 두근거리거나 했던 것은 결코 아니었고, 그저 누군가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행위 자체에 대해서 안도감을 느꼈을 뿐이었다. 비록 파우스트의 부모는 파우스트에게 이러한 친밀한 행동을 해준 적이 없었으나, 그의 목숨을 구해주고 사제로서 받아들여준 라스마는 어린 파우스트가 학습에서 성과를 낼 때마다 칭찬과 함께 자주 머리를 쓰다듬어줬던 것이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이 녀석은 라스마 스승님이 아니야. 오히려 조금 전까지 나를 놀려먹으며 즐기던 녀석이라고!' 아주 잠깐동안 감상적인 기분에 잠겨 그리움과 편안함을 느끼기는 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룩샤나의 이러한 행동 또한 자기를 놀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던 것이다. 결국 파우스트는 불쾌감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하지만 조금 전보다는 풀어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너, 아까 분명히 우리가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갈 생각이 들지도 않을 정도로 잘 대해준다고 하지 않았냐? 그런데 이런 식으로 계속 모멸감만을 준다면, 말라 비틀어지든 잿더미가 되든 결코 가만히 있지는 않을거다. 어차피 너희 입장에서는 우리가 살아있어주지 않으면 곤란하다며?" "그야 그렇긴 하지만..." "후우... 아무튼, 우선은 옷이나 입지 그래? 대체 언제까지 그러고 돌아다닐 생각이냐고. 진짜 노출광이냐?" "으음, 난 이대로도 상관없지만..." "..." "아핫, 농담이야. 지금 입고 올테니까 잠시만 기다려." 그렇게 말한 룩샤나가 방문을 열고 나가고는 다시 방문을 닫으려고 했을 때, 파우스트가 아직 남아있던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한 가지만 더 물어보고 싶은데." "응? 뭔데?" "나와 티파니아를 납치하러 왔을 때, 나와 같이 있던 다른 사람들에게 별도의 위해를 가하지는 않았겠지?" 룩샤나가 티파니아를 성희롱하는 상황에 끼어들며 기싸움을 벌였던 탓에 이 질문이 상당히 나중으로 밀려나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직 자신이 엘프들의 땅에서 무엇을 해야 할 지에 대한 뚜렷한 계획이 세워지지 않은 지금의 시점에서 그들에 대한 질문은 파우스트가 가장 걱정스럽게 신경쓰던 점 중 하나였다. 파우스트로서는 엘프들이 그들을 해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기울이기는 했지만, 역시 여기에 대해서는 당사자로부터 확답을 얻기 전까지는 안심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약간 열린 틈으로 고개만 들이민 채 파우스트의 질문을 받고 있었던 룩샤나는 그 질문에 대해서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 그거라면 걱정하지 마. 아무도 손대지 못하도록 했으니까 말이야." "...뭐, 그렇다면 다행이고." "흐~음...?" 룩샤나의 대답을 들은 파우스트의 반응은 다소 퉁명스러운 어조이긴 했지만, 그러한 질문을 한 시점에서 다른 사람들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감출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러한 파우스트의 반응에 대해서 룩샤나는 웃음을 띄우면서도, 묘하게 의아하다는 표정이기도 했다. 뭔가 묻고 싶은 것이 있는 표정이었지만, 옷을 입기로 한 이상 그것을 먼저 수행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후우, 지쳤어." 룩샤나가 문을 닫자마자, 파우스트는 그대로 침대에 등을 댄 채 드러누워버렸다. 경과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생각도 못한 일로 감정적으로 행동하게 되었던지라 무척이나 피곤한 기분이었다. 그러한 파우스트에게 티파니아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저기... 괜찮아?" "응? 뭐가 말이야?" "아니, 그게 그러니까... 나 때문에 파우스트가 룩샤나 씨에게 그렇게 일방적으로 놀림당했던 거잖아?" 파우스트는 왠지 미안하다는 분위기를 띄고 있는 티파니아에게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천만에, 저 엘프 계집애는 너랑은 상관없이 처음부터 작정하고 날 놀리러 온 거야. 일부러 전라로 온 것을 보고도 모르겠어?" "그, 그렇지만... 괜히 나 때문에 더 고생하지 않았나 싶어서..." "흥, 상관없다니까? 어차피 우리는 적대시하는 세력에 포로로 붙잡혀온 거라고. 그냥 이런 애들 장난 같은 수준의 말다툼이면 차라리 과분한 대우지." "..." 파우스트는 티파니아가 괜히 책임감을 느끼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므로 그런 식으로 둘러대기는 했지만... 솔직히 정신적으로 데미지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매료의 묘약을 먹은 루이즈에게 밤새도록 시달리고, 바로 다음 날 아침 퀴르케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상황이 비견될 정도였다. 물론 그런 것보다도 파우스트의 정서에 심대한 타격을 준 일은 훨씬 많았지만, 그에게는 '도저히 익숙하지 않은 분야'에서 별 다른 저항도 못한 채 굴욕을 겪었던 일이라는 점에서 그 때의 일이 지금과 비교가 가능했던 것이다. "아, 아무튼... 고마웠어." "뭐가?" "파우스트는 룩샤나 씨가 내게 그, 그런 장난을 치기 시작해서... 내가 곤란해하니까 도와줬던 거지?" "그야 뭐... 그런 터무니없는 짓거리를 당하는 데 어떻게 보고만 있겠어? 전에도 말했지만, 난 내 친부와 관련된 사정 때문에 그런 일은 정말로 불쾌하게 여겨진다고." 파우스트는 티파니아를 도와준 일이 그녀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자신의 트라우마로 인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현재 티파니아가 의지할 대상이 자기 뿐이라고는 하지만, 이 상황으로 인해 쓸데없이 그녀와 가까워지는 것을 경계했던 것이다. "어쨌든 정말 고마워. 그러니까 혹시 아까 일에 대해서 내 반응이 걱정된다면... 거기에는 신경쓰지 않아도 돼. 그리고..." "또 뭐지?" 잠시 머뭇거리던 티파니아는 약간 쑥쓰러운 기색으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좀 전의 파우스트는... 조금 귀여웠을지도..." "...지금 너도 날 놀리는 거냐?" "아, 아니, 그게... 칭찬...이었는데..." "...후우." 티파니아의 그 말에 파우스트는 다시금 눈을 꼭 감은 채 머리를 감싸쥐었다. 솔직히 귀엽다는 말을 듣고 기분이 좋아질 남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말이다. 룩샤나의 경우는 처음부터 놀리려는 어느 정도의 악의가 있었으니 그렇다 쳐도, 지금 티파니아는 진심으로 그런 소리를 하는 것 같았기에 타격이 더 컸다. 굳이 표현하자면 긴장이 풀린 상태에서 등을 맞긴 아군에게 비수를 맞은 기분이라는 느낌이었다. '...나, 진짜 여기서 뭔가를 할 수 있기는 한걸까? 벌써부터 미쳐 돌아버릴 것 같은데?' ----------------------------------------------------- 본격 월간 연재팬픽. 참고로 전반부에 파우스트의 텔레포트 관련 설정이 보충되어 있습니다. 길게 쓰기는 했는데, 한 마디로 요약하면... 파우스트의 마법 재능은 텔레포트 몇 차례만 해도 빌빌거리던 1부 초반과 비교해서 눈꼽만큼도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 여기서 마법 재능이란 라스마의 사제로서의 기술 응용력이 아니라, 마법을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의 정도를 말하는 겁니다. ![]() 이 때는 상대가 탈론이라 초반에는 거의 디나이 당했습니다만, 그래도 나름대로 킬도 따면서 그럭저럭 하고 있었습니다. 봇에서의 무덤 싸움에서 패했기 때문에 지긴 했습니다만... 문제는 이 다음 판. ![]() 미드 상대는 카타리나였는데, 초반에 서로 개피인 상태에서 카타리나가 타워다이브를 해서 같이 죽는 바람에 1킬 1댓을 기록한 이후에는 그냥 신나게 짓밟아 주고 있었습니다. cc기도 없고 스킬 데미지도 궁극을 제외하면 별로 안 되는데다 그 궁극 조차도 e로 피하면 그만인 피즈에게 있어서 카타리나는 호구나 마찬가지죠. 문제는 탑과 봇이 멸망했다는 것... 탑 트린다미어는 아칼리에게, 봇의 베인 소라카는 그레이브즈 알리스타에게 처참할 정도로 찢겨나갔습니다. 상황이 이러니 저도 로밍을 다니면서 탑에 가서는 아칼리를 잡았고, 그 다음 봇에서는 타워 앞에서 알짱거리던 봇 듀오+아무무를 잡고 트리플 킬을 기록했습니다. 그렇게 초반 1킬 1댓을 기록한 이후로 12연속으로 킬을 하기는 했지만, 원딜 베인이 망했기 때문에 결국 한타에서는 번번히 지면서 졌습니다. 참고로 팀 전체의 킬 횟수는 15... ...진짜 LOL은 누커보다는 원딜이 커야만 이길 수 있는 게임입니다. 아니면 딜탱이 겁나게 안 죽거나. 누커만으로는 한계가 있어요. 최근에는 LOL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주말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PvP를 6판 했는데...
![]() 어차피 랭크게임은 할 생각이 없는, 승률 50% 넘는 것을 유지하기를 목표로 할 뿐인 쪼말충이긴 합니다만, 5연패를 당하니 솔직히 기분이 엉망이긴 했습니다. 첫 번째 판에는 소라카 서폿으로 원딜인 베인을 지원했는데, 적인 트리스타나와 블리츠크랭크를 상대로 그럭저럭 킬도 따내고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근데 정글과 미드가 멸망했습니다. 아군 피들이 카운터 정글로 블루를 빼앗긴 뒤부터 무작정 다이브만 하며 킬을 줬고, 미드에서는 라이즈가 카사딘에게 조공을 거듭하는 바람에 결국 게임이 말렸죠. 두 번째 판에는 피즈로 미드를 섰습니다. 미드 상대인 아리(2킬 6댓)를 밟아주고 있었는데... 봇에서 그레이브즈 싸움에서 밀리더니 결국 한타에서 줄줄이 패배하고 게임이 끝났습니다. 주력 챔피언인 피즈로 간만에 오버댓(5킬 6댓, 참고로 팀 전체 킬이 8...)을 당하니 이 때부터 기분이 영 아니더군요. 세 번째 판에서는 신지드로 정글을 돌았습니다. 원래는 솔탑을 가려 했는데 미드자리를 놓고 블라디미르와 탈론이 다투더니 챔피언 고르는 시간이 다 끝날 때까지 서로 챔피언을 바꾸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제가 강타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게임에서는... 탈론은 상대 베이가를 처절하게 짓밟고 있었고 봇의 미스 포춘도 케이틀린을 상대로 선전하고 있었는데... 미드가겠다고 설치던 블라디미르가 문도에게 이른 시간부터 퍼블을 내주며 털렸습니다. 지원을 몇 차례나 가며 문도를 잡기는 했지만, 탑 타워를 밀겠다며 솔플하다 문도와 사이온에게 조공만 하는 블라디로 인해 결국 문도는 워모그를 2개나 들었고, 사이온도 풀템을 착용하는 바람에 게임 자체가 말렸습니다. 다른 챔피언을 죽여도 문도와 사이온이 살아남아 나머지를 다 썰어버리니 이건 뭐... 네 번째 판에서는 마오카이로 정글을 갔는데... 시작부터 망조가 들기 시작했습니다. 레이스부터 먹고 블루버프를 주는 골렘에게 갔는데, 리시해주던 미드의 빅토르가 블루를 스틸했습니다. 네... 이걸로 저는 잉여가 되었고, 빅토르는 블루를 먹고도 상대 그라가스에게 털렸습니다. 거기에 탑에서 벌어진 모기대전에서도 아군 블라디미르가 처참하게 발리는 바람에... 결국 또 패배. 다섯 번째 판은 멘붕의 결정체였습니다. 상대 리븐이 게임 시작하자마자 나가버리는 바람에 아군이 머릿숫자가 하나 더 많은 상태라 분명히 유리한 상황이었고, 미드의 베이가도 상대 애니를 상대로 그럭저럭 선전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군 정글 마스터 이를 족치고 탑으로 온 샤코와 맞대결을 하고 있었는데, 마이를 재물로 삼고 버프까지 달고오는 샤코였기 때문에 조금 고생하긴 했지만 그렇게 밀리지는 않았습니다. 샤코에게 털린 마스터 이는 갱킹을 포기하고 백도어만 줄창 하기는 했지만 20분만에 탑 억제기까지 깨버렸기 때문에 그럭저럭 역할을 하기는 했죠. 그런데... 봇 듀오인 애쉬와 쉔이 패망했습니다. 게임 시작한지 3분만에 퍼블을 주더니 그 때부터 주구장창 털리며 킬을 헌납하더군요. 결국 30분도 되지 않아서 트리스타나는 인피니티와 팬텀 댄서, 버서커와 블써를 꼈고... 그 때부터 한타가 시작되자 버틸 수가 없는 지옥이 시작되었습니다. 잘 크지 못해 잉여화된 마스터 이는 물론이고 애쉬와 쉔이 완전히 망했기 때문에 트리스타나의 화력을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상태가 되었던거죠. 이게 어느 정도였나 하면... 방어력이 200을 넘고 피통이 3천 후반대를 찍은 신지드가 궁극을 쓰고도 5초를 못 버틸 지경이었으니... 다른 챔피언들이 어떤 신세였을지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에휴... ![]() 그런데 이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일이 있었으니... 아군 코그모가 곡사포 한 방으로 적 바론을 스틸하는 데 성공했다는 겁니다. 이 때부터 완전히 분위기를 탄 아군은 한타에서 번번히 이기기 시작했고, 3킬 4댓 3어시로 부진하던 저도 워모그를 든 이후에는 신지드와 함께 탱커 역할을 하며 나름대로 활약을 할 수 있었습니다. 바론 스틸이라는 정말 작은 변수로 인해 게임의 판도가 바뀌는 것을 보니, 정말 LOL은 멘탈게임이 맞는 모양입니다. 라인 하나가 무너지면 팀원 전체가 무너지고, 뭔가 운이 좋은 일이 일어났을 뿐인데 그것 만으로 사기에 영향을 끼칠 정도이니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