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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요컨데 처음부터 '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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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86화 : 같은 시각, 파우스트는... 마법 학원의 정문 밖으로까지 도망치듯 달려나간 루이즈는 학원에서 조금 떨어진 장소에서 주저앉은 채 울고 있었다. 학원 내부에 도저히 있을 수 없을 것 같다는 마음 때문에 정신없이 정문 밖으로 뛰어나가다가 그만 지쳐서 주저앉아버린 것이다. 밤 하늘에 뜬 2개의 달과 별, 그리고 저기에 떨어져 있는 학원에서의 불빛을 제외하면 별 다른 광원도 없었기 때문에, 여전히 카틀레아의 모습을 한 루이즈의 주변에는 깊은 어둠이 깔려있었다. 마치 온 세상에 자신 혼자서만 홀로 남겨진 듯한 허무함과 적막감이 느껴졌지만, 루이즈는 거기에 신경쓰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주변의 어둠이 자신의 마음 속을 대변해주는 느낌까지 받았다. 그렇게, 루이즈는 드레스가 흙으로 더러워지는 것에는 조금도 신경쓸 겨를이 없다는 듯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면서 서글프게 울었다. "그래... 따지고 보면, 난... 딱히 파우스트에게 제대로 고, 고백을... 한 것도 아닌데다가... 걔가 날 좋아한다고 이야기를 한... 적도 없기는 해... 배신이고 뭐라고 할 것도 없이... 처음부터 그냥... 메이지와 그 사역마라는 그 이상...의 관계는 아닐지도 몰라... 그, 그런 건 그것대로 슬프긴 하지만... 나도 알기는 한다구...! 하, 하지만...! 그, 그렇다고 해도... 이런 건 너무하잖아...! 지, 지금까지 공주님에게는 조... 조금도 관심이 없는 것... 처럼 행동했으면서...! 오히려 싫어한다는 투로... 말했으면서...! 그, 그래놓고 실은 사귀는 사이였다니...! 어, 어떻게... 어떻게 그런 식으로 날 속일 수 있어...! 거, 거기에 대해서... 제대로 내게 이야기라도 해...줬더라면, 나, 나라고 해도 조... 조금 쯤은 납득할 수 있었을텐데...! 공주님도 공주님이야...! 내, 내 마음을 알고 계시다고 하셨으면서...! 마치 날 응원...하는 것 처럼 말씀하셨으면서...! 그, 그러면서 실은... 파우스트와... 교제하고 계셨다니...! 어쩜 이러실 수가 있어...! 내, 내게는 단 한 마디의 말씀도 없이... 이런 식으로 내 뒷통수를 치시다니...! 날 생각해주시는 척 하면서... 실은 이렇게 날 배신하고 계셨다니...! 너무해... 너무해... 너무하다고...! 어째서... 대체 어째서...!" 처음 두 사람이 입맞춤을 하는 모습을 봤을 때, 루이즈는 절대로 이런 일이 사실일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 상황 자체를 부정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분명히 그녀가 '파우스트를 찾아 본탑 2층의 댄스 홀에서 나오기 이전까지 홀 내부에서 파우스트의 모습으로 가장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점' 때문에 그 자리에 있던 남성이 진짜 파우스트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거기에 '어쩐지 앙리에타가 파우스트에게 마음이 있는 것 같다는 점'과 '앙리에타가 자신에게도 알리지 않은 상태로 학원에 찾아왔다는 점'까지 더해지자 그 자리에 있던 여성이 진짜 앙리에타임에 틀림없다고 확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식으로 믿었던 두 사람의 배신이라는 잔혹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을 강요당하게 된 루이즈는 결국 두 사람에 대한 엄청난 배신감과 분노에 휩싸이게 되었다. 섬겨야 할 왕족으로서 뿐만이 아니라 소꿉친구로서 오랜 세월동안 믿어왔던 앙리에타와, 비록 처음 소환했을 때에는 정말로 싫었지만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여러 일들을 함께 겪으며 결국 좋아하게 되어버린 파우스트의 배신과도 같은 행위는 지금껏 그 어떤 경우보다도 루이즈를 절망적으로 만들었다. 어렸을 때 마법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는 이유로 어머니로부터 꾸중을 받았을 때보다도, 와르드에게 배신당했을 때보다도, 그리고 파우스트가 정말로 죽어버렸다고 생각했을 때보다도 더욱 더 그녀를 처절하고 비통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용서 못해... 절대로 용서 못해... 저,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거야...! 어, 어떻게... 내게 이럴 수 있냐고...!" 아까전부터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던 루이즈의 눈은 마치 화수분이 되기라도 한 듯, 언제까지나 눈물이 마르지 않을 것 처럼 그칠 줄을 몰랐다. 그렇게 루이즈가 비통에 가득찬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하고 있을 때, 어둠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엇을 그렇게나 용서할 수 없다는 거지?" 너무나도 충격적인 사태에 반쯤 얼이 나갔던 루이즈는 그 어둠속의 목소리를 마치 자신의 마음속에서 자문하는 것으로 인식했다. "배... 배신당했어... 그래서, 용서할 수 없어..." "호오, 누구에게 배신당했지?" "무척이나... 믿었고, 소중히 여겼던 사람들에게..." "그럼, 복수를 해야지." "복수...?"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며? 그럼 복수를 해야지. 네게는 그럴 힘이 있잖아? 위대한... '허무의 사용자'니까." 처음에는 별 다른 생각도 없이 그 목소리에 대답했던 루이즈는 반복적으로 들려오는 그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는 점과 그 음성의 분위기가 마치 '자신의 처지가 상당히 꼴 좋게 되었다는 듯 들렸다는 점', 그리고 자신이 '허무의 사용자'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주 약간이나마 정신을 차렸다. "...누, 누구야? 설마... 일전에 알비온에서 날 습격했던... 허무의 사역마, 묘드니트니른?" "뭐... 일단은 그렇지. 룬의 이름으로 불리우는 건 좀 기분 나쁘지만... 뭐, 어쩔 수 없으려나? 한 때는 셰필드라는 이름을 쓰기도 했지만, 어차피 그것도 가명이었으니 상관은 없지." "어서 모습을 드러내!" 비통한 와중에도 상대에 대한 경계심을 품은 루이즈는 묘드니트니른에게 소리쳤고, 그러자 어둠속에 가려져 있던 목소리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에는 인간처럼 보였으나, 등에 날개가 돋혀 있었다. "가, 가고일...?" "안심해. 널 해치려는 건 아니야." 어느 새 지팡이까지 뽑아들고 경계하는 루이즈에게 다가온 가고일은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듯 아예 루이즈 앞에 정중하게 무릎까지 꿇었다. "뭐, 뭐야? 대체 무슨 속셈인거야? 이런 수상한 짓 따위는 하지말고 차라리 공격을 하려면 하든가 하라고! 아니면 모습을 드러내던가!" "요전 일은 사과하지. 하지만 그건 일종의 시험이었어. 요컨데, 네가 우리편이 될 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확인해보고자 했던 것이지." "내가 그 말을 어떻게 믿으라는 거야?" "어머, 그럼 네가 달리 믿을 수 있는 건 대체 뭐가 있지?" "그, 그건..." 루이즈는 반박할 말을 잃어버렸다. 정말로 믿고 있었던 두 사람에게 배신당했다는 기분에 이제는 아무도 믿을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루이즈에게 묘드니트니른의 목소리가 속삭이듯 들려왔다. "하지만, 내 주인님은 달라. 널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분이거든." "그게 대체... 무슨 말이야?" "무슨 말이냐니... 그야 당연하잖아? 내 주인님 역시 너와 같은 '허무의 사용자'인걸." "같은... 허무의 사용자...?" "그래. 같은 허무의 사용자이기에 공통적으로 느끼며 통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거지. 이를테면 네가 허무에 눈뜨기 전까지 겪어왔을 타인의 모멸적인 시선과 정체성의 혼란 및 자괴감... 그리고 허무에 눈뜬 이후에도 남들과 다른 자신에 대한 위화감이나 자신에게 막대한 힘이 주어진 이유에 대한 고민 및 불안감 등등... 그런 건 내 주인님 역시 겪었던 일이야. 그런 기분은 같은 허무의 사용자가 아니라면 결코 이해할 수 없을껄? 뭣도 모르는 녀석들이 너를 이해하는 양 지껄인다 하더라도 그런 건 입발린 소리에 지나지 않아. 오직... 같은 허무의 사용자만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아...!" 루이즈는 묘드니트니른의 말에 끌리기 시작했다. 목소리 자체에 매혹의 효과가 부여된 마법이 걸려있기도 했고, 너무나도 혼란스러운 일을 겪은 직후라 루이즈가 완전히 재정신을 차리지 못한 상태이기도 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이야기의 내용 자체가 루이즈에게 공감되는 바가 있기도 했었던 것이다. 루이즈가 허무에 눈뜨기 이전까지 겪었던 온갖 괴로운 경험은 여전히 그녀에게 트라우마로 남아있었던 데다가, 자신의 강력한 허무의 힘이 지난 전쟁의 발발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는 점을 알게 된 이후로는 자신이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한 두려움도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거기에 이 이야기를 전달해주는 묘드니트니른의 어조도 한 몫을 했다. 루이즈와 비슷한 경험을 했었다는 '그녀의 주인님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이 담긴 목소리'였기 때문에 루이즈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정말로... 정말로 내 편인거야? 그... 당신의 주인이라는 사람은...?" "그래, 맞아." "정말로...?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거야...?" "절대로 배신하지 않아." 가고일은 루이즈를 업으려는 듯 몸을 굽힌 상태로 방향을 돌렸다. "자, 타도록 해. 나의 주인님을 만나러 가자구. 널 이해해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를." 더 이상 묘드니트니른의 목소리에 저항할 수 없게 된 루이즈는 가고일의 등에 몸을 실었고... 이내 스르르 잠에 빠지듯 의식을 잃었다. 루이즈를 확보하는데 성공한 묘드니트니른은 무척이나 만족한 듯 중얼거렸다. "후후후... 나도 예상치 못한 '우연한 일' 덕분에 일이 더 손쉬워졌군. 남은 건... 그 계집애가 그 녀석을 처리할 수 있느냐인데... 어디 어떻게 되었나 가 볼까? 뭣하면 지원을 해줄 수도 있고." 점심식사 이후의 훈련을 마치고 루이즈의 방으로 갔다가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 슬레이프니르의 무도회에 대한 약속을 했던 파우스트는 루이즈의 방에서 나온 직후 학원 부지의 본탑에서 가장 멀찍이 떨어진 구석의 나무에 기댄 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원래는 정문 근처로 가서 데르플링거가 오기를 기다리려고 했으나, 슬레이프니르의 무도회 준비로 인해 학원의 여기저기가 시끌벅적해졌고, 그 중에서도 특히 무도회가 열리는 댄스 홀은 정문에서 곧장 가면 위치하는 학원 본탑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시끄러운 참이었으므로 그의 신경을 거슬렸던 것이었다. 데르플링거가 사냥을 통해 구해온 뼈는 스켈레톤의 재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그 자신이 직접 추가적인 가공을 해야 했으므로, 파우스트는 데르플링거에게 '돌아올 때에는 곧바로 자신을 찾아올 것!'이라고 강조했었다. 즉 데르플링거는 학원으로 돌아온 즉시 파우스트가 있는 곳으로 찾아와야 한다는 이야기이므로, 파우스트가 학원 부지의 구석으로 가 버리는 것은 데르플링거를 귀찮게 만드는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데르플링거가 자신을 찾는 수고를 하든말든 자기 앞으로 뼈가 배달되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배려는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수정령 기사대를 굴릴 때 그 역시 같이 행동했기 때문에 조금 지쳐있었던 파우스트는 그러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 파우스트가 눈을 뜬 것은 루이즈가 그를 찾기 위해 본탑 2층의 댄스 홀에서 나간지 5분이 지났을 즈음에 눈을 떴다. "이런... 조금 오래 잠들었었나? 루이즈 녀석이 기다리겠네. 하여간... 데르플링거 녀석은 왜 이렇게 늦는거야?" 괜시리 아직껏 도착하지 않은 데르플링거에게 불평하면서 파우스트는 자리에서 일어서서는 본탑으로 슬금슬금 향하던 파우스트는... 도중에 그 자신을 기겁하도록 만드는데 충분한 모습을 보고야 말았다. 아무리 봐도 자신의 도플갱어로밖에 보이지 않는, 자신과 똑같은 외모에 완전히 같은 복장을 인간이, 지금 이 시점에서 왜 이 학원에 있는지조차도 이해가 가지 않는 앙리에타와 서로 끌어안고 있는 모습을 본 것이다. '...어?' 잠깐동안 그 장면에 시선이 고정된 파우스트는 눈살을 찌뿌렸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아직 잠이 덜 깬건가...?' 파우스트는 두 눈을 감은 채 양손으로 자신의 뺨을 얼얼할 정도로 때린 뒤에 다시 눈을 떴지만, 눈앞에서 자신의 도플갱어와 앙리에타가 러브신을 연출하고 있는 건 여전했다. 이건 눈의 착각 같은 것이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이, 이, 이, 이, 이건 또 뭐, 뭐, 뭐야?! 대, 대, 대, 대, 대체 뭐가 어, 어, 어, 어, 어떻게 된 거냐고?!' 자신이 생각해도 지나치게 초현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 크게 놀란 파우스트는 하마터면 경악에 찬 외침을 지를 뻔 했으나... 그런 행동이 무척이나 꼴사나운 것으로 보일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에 허세력을 발휘하여 간신히 그 외침을 마음 속에서만 울려퍼지도록 하는데 성공했다. 힘겹게 평정을 되찾은 파우스트는 미지의 상황에 대한 거부감을 불쾌하기 짝이 없다는 표정으로 감추면서 그들에게 다가가 추궁하기 시작했다. "...어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보실까?" "꺄, 꺄악?!" "어, 파우스트잖아?" 앙리에타와 꿈에서도 상상해 본 적 조차도 없고 상상조차 하고 싶지도 않은 행위를 하던, 자신과 완전히 똑같이 생긴 도플갱어가 쑥쓰러워하는 표정(이것 역시 파우스트로서는 심히 불쾌했다.)을 지으면서 자신의 이름을 부른다는, 어쩐지 정신줄을 붙잡지 않으면 그대로 미쳐버릴지도 모를 것만 같은 경험을 한 파우스트였으나...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여 일단은 꾹 참고는 다시 그에게 현 상황에 대해서 설명을 요구했다. "넌 대체 누구야? 그리고 이건 대체 뭐가 어떻게 된 상황이냐고? 어서 설명해!" "으윽...! 그, 그렇게 무서운 표정 짓지 마. 수상한 사람처럼 취급하지도 말라고! 난 피에르야! 수정령 기사대 소속의 피에르!" "...뭐?! 피에르? 그런데 네가 왜 내 모습을 하고 있어? 그리고 이 여자는 또 누군데? 설마 진짜 여왕인 건 아니겠지?" "무, 무슨 그런 터무니없는 소리를...! 얘는 나랑 사귀는 마리라고!" "그런건 아무래도 좋아. 중요한 건 왜 네녀석들이 하필이면 나와 여왕의 모습을 하고서 그, 그런 행동을 하고 있었냐는 거니까!" "으음, 아무래도 파우스트는 슬레이프니르의 무도회에 대해서 잘 모르는 모양이구나..." 피에르는 한숨을 쉬면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슬레이프니르의 무도회에서 말하는 가장이란 '진실의 거울'을 사용하여 '그 자신이 가장 동경하는 상대의 모습으로 변신하는 것'이라는 점과, 자신은 원래 가장한 마리와 따로 만나기로 계획했으나 '점심식사 이후의 과도한 훈련으로 인해 방금 전까지 의무실에서 뻗어있다가 지금 막 거울을 통해 가장을 하고는 둘이서 만나 홀 밖으로 나왔다는 것(즉, '루이즈가 홀 밖으로 나간 뒤에야 홀에 들어가서 파우스트의 모습으로 가장했다는 것')' 등등에 대해서 말이다. 파우스트로서는 하필이면 자신과 앙리에타의 모습을 해서 그런 식으로 애정행각을 벌이고 있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불평만 산더미처럼 쌓여있었지만, 그들이 처음부터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골탕먹이기 위한 의도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기도 했고, 무엇보다 피에르가 자신의 모습으로 변했던 이유가 '가장 동경하는 상대가 자신'이라는 점까지 알게 되자 더 이상 그를 마주하는 것이 곤란하게 느껴질 정도의 쑥쓰러움까지 느끼게 되었다. 애초에 수정령 기사대가 학원 내에서도 특히 자신에 대해 호감을 가진 사람이 많은 집단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되자 적잖이 당황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쳇...! 내 모습을 하고서 남들이 오해할만한 행동은 하지 말란 말이야! 아무리 가장이라고는 해도... 아휴... 너희 둘이서 뭘 하는지는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겠지만, 이왕이면 딴데가서 좀 하라고. 정말이지..." 결국 파우스트는 해일처럼 밀려오는 쑥쓰러움을 억지로 감추기 위해 짐짓 불만스럽다는 듯 적당히 중얼거리면서 황급히 그 자리를 떠났다. 허세력을 발휘해도 피에르와 눈을 제대로 마주치는 것 조차도 하지 못했던 건 어쩔 수 없었지만 말이다. '정말이지, 이런 게 가장이라니... 터무니없다고. 게, 게다가... 후우... 가장 동경하는 대상이 나라니... 나도 왜 이렇게나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건지 원...' 자신의 얼굴이 화끈거리면서 달아오르는 것을 털어버리기라도 하려는 듯, 파우스트는 고개를 세차게 휘저었다. 잠깐동안 그렇게 한 뒤에야 파우스트는 비로소 진정될 수 있었다. 아직도 뺨에 미열이 남아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뭐... 저기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하자고.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고... 어차피 다들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가장을 한 상황이니 저런 모습을 본다고 해서 특별히 이상한 오해를 품거나 하지는 않겠지... 그나저나, 왜 하필이면 상대가 그 여왕의 모습을 한 거냐고... 뭐, 딱히 여왕의 모습이 아닌 다른 녀석의 모습이었다 하더라도 충분히 기겁할만한 일이긴 하겠지만... 에휴, 생각하지 않기로 했으면서 왜 또 떠올리는 거지...' 애써 그 충격적인 장면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려고 노력하면서 학원의 본탑으로 향하던 도중, 파우스트는 또 다른 사람과 조우했다. 트리스테인 마법 학원의 여자 교복에다 검은 망토를 걸친 그 여성의 모습은 파우스트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자그만한 체구에다 풍성하고 치렁치렁한 핑크빛 머리카락, 그리고 다갈색을 띄는 눈동자의 소유자인, 파우스트의 명목상의 주인인 루이즈였던 것이다. 그녀는 파우스트를 보자마자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지만... '...이건 루이즈가 아니야. 절대로 루이즈일 리가 없어. 루이즈가 아닐 뿐만이 아니라, 심지어 학원 내부의 인물 조차도 아니야. 그럼... 누구지? 아무래도 내가 목적인 모양이긴 한데...' ...슬레이프니르의 무도회에서의 '가장'의 의미를 조금 전 충격요법까지 동원하면서 체득한 파우스트였기에 그녀가 루이즈일 것이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파우스트가 지금 자신에게 다가오는, '루이즈의 모습을 한 상대가 진짜 루이즈가 아님과 동시에 학원 내부의 인물조차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유는 한 두가지가 아니었는데, 상대와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그 중에서도 상당히 결정적인 이유 하나를 인식할 수 있었다. 파우스트는 지금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는 상대로부터 불안감과 초조함이라는 형태의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었고 그냥 막연히 사역마의 계약을 하는 도중에 일어난 정도로만 추측하고 있었지만, 파우스트는 루이즈의 감정 만큼은 느낄 수 없었던 것이다. 상대로부터 딱히 자신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이 느껴지지도 않았기 때문에 크게 긴장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상대가 수상한 것은 마찬가지였으므로 파우스트는 경계의 감정이 실린 목소리로 선수를 쳤다. "루이즈의 모습을 하고는 있지만 진짜는 아니로군." "...네?" 어차피 상대가 루이즈가 아니라는 건 진작에 간파했지만, 지금 상대가 보인 반응은 파우스트로 하여금 그런 생각에 더욱 확신을 심어줬다. 파우스트는 루이즈의 모습으로 자신에게 접근한 이 상대의 의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지만, 일단 상대가 '학원 내의 인물'조차도 아니라는 점과, 상대가 루이즈의 모습으로 나타난 이상 이를 이용한 뭔가를 꾸미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고 있었다. 파우스트는 자신이 상대가 루이즈가 아니라고 판단한 이유에 대해서 늘어놓음으로써 상대의 의도 자체가 한없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그에게 똑똑히 일깨워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여겼다. 요컨데, 처음부터 상대를 몰아붙여서 압도당하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내가 아는 루이즈'는 지금 내가 한 말에 절대로 그런 식으로 반응하지 않아. 틀림없이 벌레라도 씹은 표정을 지으면서 '뭐야? 그 태도는. 왜 멀쩡한 사람을 가짜로 몰려고 들어?'라고 짜증을 냈겠지. 뭐, 굳이 이런 부분이 아니라고 해도... 기본적인 표정조차도 다르구만. 루이즈 녀석은 말이지, 평소에 좀 더 눈꼬리가 올라간 심통맞은 표정을 짓고 있거든. 얼굴만 같으면 넘어갈 거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라고, 수상한 녀석." "아니, 전 딱히 수상한 자가..." "학원 내의 인물조차도 아니라는 점에서 충분히 수상하다고." "...?!" 루이즈의 모습을 한 상대는 다소 여럿 감정이 섞인듯한 복잡한 표정으로 자신이 수상한 사람이 아니라고 항변하려고 했지만, 그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파우스트에게 차단되었다. 파우스트로부터 단정적으로 외부인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상대는 그 이야기가 틀리지는 않았는지 거기에 대해서 흠칫 놀라면서도 어째서 그렇게나 단정적으로 확신해서 말할 수 있는지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을 보고 자신의 짐작이 맞았다고 판단한 파우스트는 의기양양하게 설명했다. "호오, 어떻게 보자마자 그걸 알았는지가 궁금해서 견딜수가 없다는 표정이로군. 하지만, 학원에서 루이즈 녀석이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슬레이프니르의 무도회에서 루이즈의 모습으로 가장을 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할껄? 아무리 간단한 마법이라고 해도 단 한 번도 제대로 성공한 적도 없기 때문에 '마법 성공률 제로', 그래서 '제로의 루이즈'. 그런 주제에 자존심은 드높아서 실습 때마다 기회가 주어지면 반드시 참가했다가 결국에는 폭발을 일으켜서 교실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리지. 그런 주제에 언제나 조금 실수했을 뿐이라고 우기기까지 한다고. 이런이런... 완전히 민폐가 따로 없잖아? 폭발시키는 것 이외에는 마법 하나도 제대로 못 쓰는 주제에 기만 세가지고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녀석 같으니! 아직껏 사대 계통 중 뭐가 자신의 계통인지도 모르는 결함품인 주제에! 명문 귀족가 라 발리에르가의 이름이 아까워! 정말 귀족의 핏줄이기는 한 거야? 학원은 왜 저런 녀석을 아직도 퇴학시키지 않는거지?" 마치 배우가 연기라도 하듯 과장된 손짓까지 섞어가면서 이야기를 하던 파우스트였지만, 그 직후 한숨을 쉬면서 다소 씁쓸해하는 듯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게 이 학원에서 루이즈를 바라보는 일반적인 시선이라고. 걔중에는 루이즈를 안타깝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녀석이 열등한 부류에 속한다는 점에 대해서 이견을 가지는 사람은 없어. 그렇다고 해서 루이즈의 외모가 타인의 마음을 뒤흔들 수 있을 정도로 특출난건지는... 뭐, 좀 애매하긴 하지만, 그 녀석 본인도 동년배에 비해서 발육부진인 자기 몸에 대해서 신경쓸 정도니까 다른 녀석들도 마찬가지로 생각하겠지. 이렇듯, 루이즈에 대한 학원 내부의 생각이란 건 이런 식으로 결코 호의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고. 상황이 이런데, 설마 학원 내의 인물 중에서 슬레이프니르의 무도회에서 루이즈의 모습으로 가장하는 사람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나? '진심으로 동경하는 사람의 모습'으로만 변신시켜주는, 진실의 거울을 사용하는 가장에서? 무리지... 그건, 절대로 무리야. 그 거울을 사용해서 루이즈의 모습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이 학원 내에 아무도 없어. 설령 루이즈 자신이라고 해도 말이야. 아니... 본인이라면 더더욱 무리겠군. 학원에 다니기 훨씬 이전부터 가족을 포함한 주위 사람들로부터 그런 평가를 받아왔던 녀석이 루이즈야. 아주 최근에 '어떠한 계기'를 통해서 자신의 계통을 찾고 이전과는 달리 '커먼 매직' 정도는 무리없이 사용할 수 있게 된 모양이라고는 하지만, '모종의 이유'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데다 말하기도 난감하지.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루이즈 녀석의 변화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한 채 이전과 마찬가지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자존심은 강하지만 실은 상처입기도 쉬운 녀석인데도 오랜 시간동안 타인으로부터 무능하다는 평가를 지겹도록 받아온데다, 기껏 얻은 능력이라는 건 남에게 말하기도 어려운 정도인데다 쓸데없이 거창하고 강력하기까지 해. 쓰기에 따라서는 충분히 엄청난 파괴와 혼란을 조장할 수도 있는... 그런 힘이라고. 내가 직접 루이즈 녀석에게 듣지는 못했지만... 아마 그 녀석도 어째서 자신에게 이런 감당하기도 어려운 힘이 주어졌는지에 대해서 나름대로 혼란스러워하고 있을거야. 상황이 이런데, 루이즈 녀석이 '자신이 가장 동경하는 건 자기 자신'이라는... 도저히 구제할 도리가 보이지 않는 나르시즘에 빠질 수 있을 리가 없어. 차라리 자기 자신에 대한 열등감과 혼란, 그리고 불안감에 빠졌다면 또 모를까. 뭐, 잡설이 좀 길어진 것 같기는 한데... 아무튼 이런 이유로, 학원 내의 인물 중에서 루이즈로 가장할 수 있는 인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쪽이 뻔뻔스럽게 루이즈의 모습을 하고 나타났다는 건... 뭔가 다른 방법으로 그 모습으로 변장한 다음, 이를 이용해서 내게 접근하려는 꿍꿍이속을 한 외부인이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는 거다." "..." 이상이 파우스트가 지금 루이즈의 모습을 한 상대가 학원 내의 인물 조차도 아니라고 판단한 이유였다. 이는 파우스트가 루이즈라는 인간 그 자체는 물론이고 그녀에 대한 주변의 생각까지 총체적으로 완전하게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판단이었다. 상대에게 '허무'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약간이나마 암시를 하는 표현을 사용했던 것도 상대의 정체에 대한 나름대로의 짐작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외부인이 자신을 목적으로 하여 찾아왔다는 건 루이즈가 가진 힘의 정체에 대해서 알고 있는 인물일 공산이 크다고 여겼던 것이다. 이런 파우스트의 이야기를 들은 루이즈의 모습을 한 상대는 놀라움과 안타까움, 씁쓸함과 아쉬움, 그리고 약간의 체념까지 한데 뒤섞인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표정으로 말없이 서 있는 상대에게 파우스트는 다시 경계심으로 가득한 시선을 보냈다. "자, 그럼 이제 슬슬 자백하시지, 수상한 외부인. 무슨 목적으로 그런 모습을 하고 내게 온 거지? 적어도 아직까지는 딱히 적대적으로 보이지 않으니까 나도 가만히 있는 거지만, 계속 발뺌하겠다면 나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거라고. 난 지금 네놈이 '모습을 빌린 녀석'이랑 볼 일에 늦었기 때문에 더 이상은 지체할 수가 없거든." 재촉하는 파우스트에게 상대는 한숨을 쉬면서 힘없이 대답했다. "당신이 말씀하신 건... 거의 맞아요. 적어도 학원에 소속된 사람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전부는 아니네요. 전 외부인이긴 하지만 딱히 수상한 자가 아니랍니다. 저 역시 무도회에 참가했고, 말씀하신 진실의 거울을 통해 루이즈의 모습으로 가장했을 뿐인걸요." "그래서, 결국 누구라는 거야?" 짜증스럽다는 반응을 보이는 파우스트에게 상대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전 이 트리스테인을 다스리는 부족하고 부덕한 여왕, 앙리에타 드 트리스테인입니다." "...뭐?!" 앙리에타가 학원에 찾아왔다는 이야기에 파우스트는 말도 안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왕궁에 있어야 할 앙리에타가 갑자기 이 학원에 불쑥 나타났다니... 물론 앙리에타에게는 그런 전적이 한 번 있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녀가 여왕이 아니라 아직 왕녀일 때의 이야기였다. 왕녀와 여왕은 입장도 다르고 업무 역시 다르므로, 파우스트로서는 그런 이야기를 쉽게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걸 보시면 제가 앙리에타라는 사실을 납득하시려나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한 파우스트에게 상대는 자신의 손을 들어보였다. 그 손가락에는 파우스트도 본 적이 있었던, 웨일즈 황태자의 유품인 바람의 루비였다. 그게 진짜 바람의 루비라는 건 파우스트도 알 수 있었지만, 여전히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풀지는 않았다. "진짜 바람의 루비는 맞는 것 같다만... 일전에 내가 여왕을 봤을 때에는 그게 손가락에 끼워져있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만." "네, 그 때에는 가지고 있지 않았죠. 궁 내부의 가구나 보물과 함께 처분하려고 했었는데... 재무경님이 따로 보관하고 계셨더군요. 뒤늦게 없어졌다고 생각했을 땐 얼마나 허둥거렸었는지 몰라요. 그 부끄러운 모습을 루이즈에게도 보여버렸죠. 그리고... 제가 여기에 있는 건 아무도 모르게 살짝 온 것이 아니랍니다. 어디까지나 정식 스케쥴에 포함되어 있었던 거죠. 학원장 오스만 씨께서 새롭게 학원에 입학하는 신입생들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와달라고 요청을 받았거든요. 여기에 대한 이야기도 무도회를 시작할 때 오스만 씨께서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하셨답니다." "그러니까... 나중에 루이즈나 학생들에게 물어보고 나서야 지금의 말이 맞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는 거로군. 지금 당장은 자신이 앙리에타 본인임을 증명할 수단이 달리 없다는 거겠지?" "으음, 이야기가 그렇게 되는 건가요? 예상은 했지만 정말로 의심이 많으신 분이로군요..." 탄식하듯 중얼거리는 앙리에타에게 파우스트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뭐, 좋아. 일단은 그런 걸로 믿기로 하지. 그나저나... 지금의 그 루이즈의 모습이 정말로 진실의 거울을 이용한 가장이라고?" "그렇습니다. 조금 전 당신이 말씀하신 것 처럼, 진실의 거울은 가장 '이상적인 상태'로 변신하도록 만들죠." "그렇다는 건... 루이즈를?"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는 파우스트의 반응에 앙리에타가 부연설명을 했다. "네, 맞아요. 저는 언제나 늘 그 아이가 부러웠답니다. 자신이 품은 이상대로 노력하며 행동하는 그 아이가... 무엇에도 더럽혀지지 않은 새하얀 마음이... 제가 지니지 못한 미덕을 겸비하고 있던 그 아이가... 그 무엇에도 흔들리는 법이 없이 자신의 정의를 관철하는 루이즈가... 전 늘 부러웠죠." "..." 파우스트는 앙리에타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었다. 앙리에타의 루이즈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 딱히 비아냥을 할 생각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겨우 1년 남짓한 시간이긴 하지만, 파우스트 역시 루이즈가 그런 경향이 있다는 점을 익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귀족의 권위라는 걸 말로만 내세우는 게 아니라 그걸 실천하기 위해서라면 때론 무척이나 위험한 일도 하려고 했던 사람이 바로 루이즈였으니 말이다. 적어도 노력에 대해서 만큼은 더 이상 뭐라고 할 말이 없기도 했다. 그렇기에 이전부터 귀족을 싫어해왔고 지금도 여전히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파우스트라 해도, 루이즈에 대해서는 한 수 접어주고 있었다. 뭐... 물론 조금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생각이 짧고 굉장히 무모한데다 보기에 상당히 위태위태하다는 부분을 덧붙일 필요가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만약 제게 그 아이의 10분의 1 정도에 해당하는 용기가 있었더라면... 저는 그렇게나 큰 과오를 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답니다." "과오라... 지난 번의 '복수전' 말인가?" "...네. 그 전쟁으로 인해... 제가 복수심을 참지 못하고 일으킨 전쟁 때문에...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이미 벌어진 일이니까... 지금부터 제가 죽을 때까지 참회한다고 해도 소용이 없겠죠." 슬픈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루이즈의 모습을 한 앙리에타에게 파우스트는 한숨을 쉬면서 중얼거렸다.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은 어쩔 수 없어. 인간인 이상 거기에 신경쓰지 않을 순 없는 일이겠지만, 거기에만 온 정신이 얽메인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지. 그럴 바에는 차라리 자난 일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해서, 앞으로는 또 다시 이런 일을 반복하지 않도록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당신은 특히나 한 나라를 책임지는 군주의 자리에 있으니까, 더더욱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행동해야 하겠지... 라고 말한다면 너무 식상하려나?"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말을 했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파우스트는 약간 겸연쩍은 듯 자조했지만, 앙리에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오히려... 고마운걸요." "..." 앙리에타가 순순히 감사의 의사를 표하자 약간 당황한 파우스트는 화제를 바꾸었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학원의 학생들을 격려차 방문했다면서 왜 이렇게 인적도 드문 곳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던 거지?" "그, 그건..." 앙리에타는 잔뜩 주저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고민하는 듯 하다가 작게 중얼거렸다.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네요.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목표를 잃어버렸다고나 할까요... 이제와서는 아무래도 좋달까요..." "...하아?" 앙리에타가 기껏 고민하다가 꺼낸 말이라는 것이 횡설수설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파우스트는 앙리에타가 대체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인지 몰라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파우스트의 시선을 알아차린 앙리에타는 헛기침을 하면서 애써 태연한 척 했다. "아니에요... 잊어주세요. 별 다른 의도는 없었어요. 그냥 바깥 공기를 좀 마시고 싶었달까... 그 정도랍니다." "..." 적당히 둘러대는 기색이 강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파우스트로서는 의아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앙리에타가 그다지 이야기를 꺼내고 싶어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자기 자신도 그렇게 궁금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뭐, 난 이제부터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서라도 무도회장에 가 봐야 할 것 같군. 그럼, 이만 실례." "네, 안녕히 가세요." 파우스트가 떠난 뒤, 앙리에타는 한숨을 쉬면서 작게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내가 끼어들 틈은 없었던 것 같아. 그러니까... 이 마음은 그냥 접어버리는 편이 낫겠지. 그 분을 위해서나... 루이즈를 위해서나..." 원래 앙리에타가 파우스트에게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조금 전의 그것이 아니었다. 파우스트에 대한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 확인해보기 위해서 좀 더 심도깊은 이야기를 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앙리에타의 그런 생각은 파우스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너무나도 안쓰러울 정도로 줄어들었다. 파우스트는 단지 수상한 상대가 자신을 속일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그런 이야기를 했던 것이었지만, 그 이야기는 루이즈에 대한 깊은 이해와 연민의 감정이 없다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루이즈와 친구로 지내왔던 그녀 조차도 알지 못했고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에 대해서까지 이야기를 하는 파우스트에게서 앙리에타는 그가 얼마나 루이즈에 대한 이해가 깊고 그녀를 은연중에 신경써주고 있으며 친밀감을 가지고 있는지를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거기에 루이즈의 파우스트에 대한 감정까지 같이 생각하면... 도저히 자신이 그 사이에 끼어들 수 있는 틈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을 파우스트가 딱히 의도했던 건 아니었겠지만, 그의 이야기는 그에게 접근하려는 앙리에타의 기를 완전히 꺾어버리는 기습으로 작용하여, 그런 시도 자체를 원천적으로 봉쇄해버리는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결국, 앙리에타는 여전히 아쉬움은 남았지만 자신의 마음을 접기로 했다. 그게 바로 자신에게 있어서 매우 특별한 두 사람 모두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한편, 파우스트는... '...결국 대체 뭐였던 거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 분위기는 왠지 뭐랄까... 후우... 아니, 됐어. 그럴 리가 있겠냐? 무슨 자의식 과잉도 아니고... 어차피 아무래도 좋을 일이야. 상관없다고.' ...어렴풋하게나마 앙리에타가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에 대한 '하나의 가능성'을 떠올리기는 했지만, 그냥 그런 가능성 자체를 무시하면서 생각 자체를 관두기로 했다. 지금은 그냥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만 생각하기로 했다. '루이즈 녀석은 아마 아직도 기다리고 있으려나? 조금 시간이 많이 지난 것 같긴 하지만, 거기서 만나기로 했으니까 특별한 일이 없다면 그냥 거기서 기다리고 있겠지.' 지금 루이즈가 어쩐지 '파우스트에게 마음이 있는 것 같은 앙리에타가 자신에게 알리지도 않고 학원에 왔다.'라는 상황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긴장한 나머지 그를 찾아 학원 내부를 돌아다니기 시작한지도 약 35분(루이즈가 '그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기 약 5분 전)이 지났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파우스트는 계속 본탑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베스트리 광장에 도착했을 때, 파우스트는 광장 변두리에 있는 벤치에 누군가가 앉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짧은 푸른 머리카락을 가진 조그마한 체구의 소녀였지만, 사용하는 지팡이 만큼은 상당히 커다란 그 상대가 누구인지 파우스트는 금방 파악했다. '저건... 타바사 녀석이로군. 무도회에는 참가하지 않았나? 뭐, 성격상 그런 분위기를 좋아할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제법 먹성은 좋았던 것 같은데. 아니면 벌써 실컷 포식하고 밖으로 나온 걸까나?' 그런 식으로 그녀의 존재를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그냥 지나가려던 파우스트였으나, 타바사가 고개를 들어 자신을 확인하는 순간... 파우스트는 그녀로부터 심상치않은 분위기를 느끼고는 제자리에서 멈춰선 뒤, 제빨리 그녀가 앉은 벤치의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여어, 내게 무슨 용건이라도 있나?" 파우스트의 목소리는 여유로웠지만, 타바사로부터 자신에 대한 '살기'를 느꼈기 때문에 실제로는 상당히 경계를 하고 있었다. 이미 왼손은 허리에 찬 크리스 나이프의 손잡이를 잡은 상태였다. "...(끄덕)" 처음에는 기습을 시도했으나, 시도하기도 전에 파우스트가 이를 알아차리고 자신을 경계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한 타바사는 자리에서 일어서서는 지팡이를 들어올려 즉시 전투 태세를 갖추었다. 자신이 타바사로부터 느낀 살기가 착각이 아니었다는 것을 확인한 파우스트는 왼손으로 허리에 찬 크리스 나이프를 뽑아든 뒤, 약간 연극조로 장난치듯 중얼거렸다. "이런이런... 난 그저 식사나 하러가려고 했을 뿐인데, 오늘따라 묘하게 방해꾼들이 많잖아? 아니지... 이거, 어쩌면 날 위한 깜짝 파티라도 준비된 것인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말이야, 그런 건 놀래키거나 아리송하게 만드는 정도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스릴까지 느낄 정도라면 너무 과분하다고. 이거... 앞으로는 또 어떤 준비가 되어있을지 살짝 걱정이 되는걸?" 입가를 살짝 비트는 웃음을 지으면서 농담처럼 이야기한 파우스트였지만, 그는 아직 알지 못했다. 오늘 밤의 '깜짝 파티'는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되지도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 * 제 85화 : 슬레이프니르의 무도회와 루이즈의 경악.
어느 점심시간의 식당에서, 파우스트는 수정령 기사대 소속의 학생들에게 둘러싸인 채 식사를 하고 있었다. 비록 파우스트는 수정령 기사대에 소속된 몸이 아니었지만 어쩌다보니 그들의 고문 역할을 떠맡게 된데다, 기사대의 소년들이 모두 파우스트에게 호의를 가지는 자들이었기에 식사를 할 때마다 자연스럽게 그들과 같이 하게 된 것이다. 이들 때문에 밀려나게 되어 식사 시간동안 파우스트와 멀리 떨어지게 된 루이즈는 속으로는 다소 불만스럽게 생각했지만, 그런 감정을 굳이 파우스트에게는 내색하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이런 상황에 아무런 변화도 주지 못했다. 사람들끼리 모여서 식사를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오가게 되기 마련인데, 그러한 점은 이 학원의 학생들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뭐, 파우스트는 대화에 끼어들지 않고 가만히 있었지만 말이다. 애당초, 파우스트는 식사 중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에 익숙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태어난 이후로 줄곧 혼자서 식사를 하는 것에 익숙했던 것이다. 유년 시절 양부와 친모가 그를 식탁에 동석시키지조차 않았던 것 부터 시작해서 라스마의 제자로 입문한 이후로도 식사는 배급받은 뒤 홀로 먹었다. 그 뒤로 지옥의 군주들을 추적하는 여행을 할 때에도 식사는 거의 혼자서 했고, '네크로맨서 사냥'에 추적당할 때에는 혼자인 것은 물론이고 끼니조차 제대로 떼우지 못한 데다가, 루이즈에게 소환된 뒤로도 줄곧 혼자서 식사를 했었다. 이런 식으로 인생의 대부분의 기간 동안 식사라는 행위를 혼자서 해왔던 파우스트였기에 식사 중 대화를 한다는 상황은 거의 겪어본 적이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식사란 음식물을 섭취함으로써 몸을 움직일 수 있도록 영양소를 공급한다는 행위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않았고, 거기에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굶었던 적이 많았기 때문에 일단 어느 정도의 양이 주어졌다면 그것을 남기는 일도 없었다. 그런 파우스트에게 있어서 자신과 함께 식사하는 수정령 기사대 소속의 남학생들의 모습은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많았다. '아, 정말이지... 그냥 얌전히 앉아서 먹기만 하면 될 걸 가지고 왜 이렇게 쓸데없이 잡담이나 늘어놓는 거야? 그냥 식사를 마친 다음에 이야기를 나눠도 될텐데. 그나마 하는 이야기라는 것도 들어보니까 별로 대단한 일도 아니더구만. 첫 날에는 하도 정신없이 질문을 해대니까 나도 적당히 이야기에 어울려주기는 했지만, 그것도 정도껏 해야지. 하다못해 입 안에 집어넣은 것 부터 삼키고 나서 말하든가. 제대로 씹지도 않은 음식물을 입안에 넣은 상태로 말하니까 이리저리 튀잖아? 지저분하기는! 니들도 명색이 귀족인데 조금은 조신하고 얌전하게 먹으면 안 되는거야? 그나마 루이즈 녀석은 얌전하게 먹는 것 같은데... 이런이런, 설마하니 다른 녀석에게라고는 해도 루이즈 녀석을 본받는게 나을 거라고 생각하게 될 줄은 몰랐군 그래. 경사났네, 루이즈. 뭐... 다른 건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간다 치자고. 그런데 말이지... 음식을 잔뜩 덜어놓고 그대로 남기는 건 대체 무슨 사고방식이야? 그런 식으로 식사한 흔적을 남겨댔다가는 추격의 단서를 제공하... 아, 아니... 딱히 도망중인 것도 아니니까 이건 지금 상황이랑은 상관없는 일이지? 나도 참, 추격당할 때의 사고방식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건가... 어흠, 그런 극단적인 경우를 차치한다 해도 말이지, 음식을 남기는 게 꼴불견이라는 건 달라지지 않아! 이것들이 굶어본 적이 없으니까 음식 아까운 줄을 모르고 이러는거지, 어디 2주일 동안만이라도 굶어봐라. 음식이라는게 함부로 여길 수 있는게 결코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될 껄? 물로 접시에 묻은 것까지 씻어서 먹으라는 이야기까지는 하지 않을테니까, 처음부터 먹을 만큼만 덜어서 깨끗이 먹는 정도는 하라고!' 그렇게 속으로 불만스럽게 중얼거리던 파우스트는 수정령 기사대 단원들이 들었다가는 기겁할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역시 이대로는 안 되겠어. 애당초 이 녀석들에게 근위기사단이라는 이름이 터무니없을 정도로 과분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지! 식사습관과 같은 기본적인 부분에서부터 생각없이 행동하니까 이놈들이 뭘 하든지 간에 전쟁놀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거라고! 어거지로 받아들인 고문직이라고는 해도, 역시 이런 꼴은 못 봐주겠어! 어디 두고 보라고... 니들이 조금은 쓸만한 녀석들이 되도록 내가 확실하게 교육시켜 주지. 그래... 확실하게 말이야.' 그런 생각을 하면서 파우스트는 자신의 식사를 끝낸 뒤 수정령 기사대 단원들도 식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지만, 당장에 이 이야기를 꺼내는 건 쉽지 않았다. 일단 기쉬가 점심 식사가 끝난 뒤 기사단의 훈련을 봐달라고 했기 때문에 기다리고는 있었지만, 기쉬는 자기가 이야기를 꺼냈으면서도 다른 단원들과 잡담이나 늘어놓고 있었다. 파우스트는 생각같아서는 이 상황에 끼어들어서 훈련이나 하라고 독촉할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억지로' 고문관 역할을 떠맡았을 뿐인데 자신이 나서서 괜히 오지랖 넓게 행동하는 것처럼 생각되고 싶지도 않았고, 기껏 자신이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그들이 자신의 이야기대로 행동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었다. 뭔가 그들이 자신들의 문제에 대해서 자각할만한 계기가 되는 일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파우스트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가만히 있을 때, 말리코르느가 파우스트에게 다가와 물었다. "근데 파우스트. 넌 이번 '슬레이프니르의 무도회'에서 어떻게 '가장'을 할 거야?" "...다른 걸 묻기 이전에 그 슬레이프니르의 무도회가 대체 무엇인지부터 설명을 해줬으면 좋겠는데." 가장 기초적인 부분부터 설명을 요구하는 파우스트에게 말리코르느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이야기했다. "으음, 역시 넌 몰랐던 모양이로구나. 간단히 설명하자면 신학기가 시작됨으로써 새로 입학하는 신입생들을 축하하기 위한 무도회라는 거지." "신학기라... 하긴, 그러고보니 얼마 전 물갈이가 있기는 했었지." 그러고보니 얼마 전에 3학년임을 상징하던 보라색 망토의 소유주들이 졸업식이 끝난 이후로 모습을 감추었고, 다시 입학식이 끝난 이후로 새로운 남색 망토를 입은 학생들이 새로 생겼다. 파우스트가 소환될 시점만 해도 1학년의 망토색이 갈색, 2학년이 검은색, 3학년이 보라색이었지만 이번 신학기부터는 1학년이 남색, 2학년이 갈색, 3학년이 검은색으로 구분지어지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게 무도회까지 열면서 축하할 일인가? 너희 귀족들의 사고방식은 여전히 이해가 안 간다니까." 사소한 일까지 축하하면서 행사를 여는 것에는 익숙치 않았던 파우스트는 불만스러운 듯 중얼거렸고, 그 말에는 기쉬가 대답했다.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 마. 어차피 귀족이라면 사교계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구. 하지만 새로 들어온 여학생들 중에서는 제대로 사교 활동을 접해보지 못했던 아이들이 많은 법. 그런 의미에서 이 슬레이프니르의 무도회는 새로운 여학생들에게 나와 같은 멋진 남성이 하나부터 열까지 어른의 사교를 가르쳐 주는 장을 마련하는 거지! 아아, 어른의 사교!" "...여학생들만?" "아, 물론 신입생들 중에는 남학생들도 있긴 하지. 그렇지만 그 녀석들이야 뭐... 될 대로 되라지. 사내놈들 따위가 어떻게 되든 나랑은 무슨 상관이야?" 대놓고 남학생 후배들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다는 투로 말하는 기쉬에게 파우스트는 비꼬는 말투로 중얼거렸다. "호오, 세상물정 모르는 귀족 소녀들을 위해 자신이 직접 가르침을 전수하려고 하다니... 참으로 훌륭한 몸가짐이로군 그래. 몽모랑시도 그 사실을 알면 너에 대해서 깊은 감명을 받을거야. 지금 당장에라도 너와 단 둘이서 이야기를 하고 싶어할 것 같지않아?" "...그, 그건 좀 봐주라. 응? 같은 남자면서 내 마음도 이해해주지 못하겠다는 거야?" 몽모랑시의 이름이 언급되자 기쉬는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지으면서 파우스트에게 사정을 봐달라고 부탁했지만, 파우스트는 코웃음을 쳤다. "흥, 왜 내게 이해를 구하려고 들지? 몽모랑시의 이해를 구하면 간단한 일이잖아?" "그, 그게 불가능하니까 하는 소리지..." 그런 식으로 기쉬가 안절부절하지 못하고 있을 때, 파우스트의 귀에 다른 기사대 대원이 하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용기사대 소속의 형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요 근래에 트리스타이나 상공에 기묘한 소음을 내는 '괴조'가 나타났다고 하더라고." "괴조?" "그렇다니까. 야간 초계 비행을 하던 다른 용기사들도 이따금씩 목격한 모양인데, 듣자하니까 폭만 150m가 될 정도로 크대!" "150m? 그렇다면 그냥 배가 아닐까?" "아니, 그건 아닌 모양인가봐. 형의 말에 따르면 커다란 새가 날개를 펼친 모양이라고 하던데, 그런 모양의 배는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하더라고." "그럼 정체가 뭐지?" "모르니까 그냥 괴조라고 부르는 거 아니겠어?"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파우스트는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최근에 출몰하기 시작한 괴비행체라... 크기가 150m나 된다면 일단 생명체는 아니라고 봐도 될 거야. 그렇게나 크고 무거운 생명체가 자체적인 힘으로 비행이 가능할 리가 없으니까 말이야. 가만, 그런데... 정체가 파악되지 않았다는 건 제대로 가까이에서 관측된 적이 없다는 거겠지? 애당초 야간 초계 비행이라면 오인하는 경우가 다반사겠지. 그렇다면, 150m라는 규모 자체가 명확하지는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봐야 할지도 모르겠군. 어쩌면 구름에 비친 다른 용기사의 그림자를 보고 겁을 먹은 나머지 괴조로 오인했을지도 모를 일... 아니, 그런데 기묘한 소음을 낸다고도 했잖아? 명색이 용기사라는 녀석이 용의 소리도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바보는 아닐텐데...? 그렇다면... 다른 인공적인 무언가라고 봐야 할까? 이전과는 전혀 다른 형태를 한 배라거나... 아니면 정체 불명의 마법도구일지도. 어쩌면... 알비온 대륙에서 루이즈를 습격했던 그 셰필드라는 여자의 새로운 장난감일지도 모르겠군. 뭐, 일단 경계를 할 필요는 있겠지.' 아무래도 최근 파우스트가 가장 신경쓰고 있는 일이 언제 다시 벌어질 지 모르는 셰필드라는 이름의 허무의 사역마, 묘드니트니른의 습격이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파우스트는 그에게 산적한 수 많은 골치아픈 일들이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 그나저나... 스켈레톤의 재료가 될 뼈의 수급이 지금 원활하지가 않다는 점이 참으로 곤란하게 되었어. 식당에도 가봤지만 대부분의 뼈는 고아서 수프의 재료에 써야 한다고 우기는 바람에 고작 17기 분량의 뼈만을 추가적으로 확보할 수 있었단 말이지... 그나마도 남은 8에큐를 죄다 지급하고 사들인 거잖아? 이거 참... 가뜩이나 무기 구입만으로도 돈이 엄청 깨지게 생겼는데, 뼈를 확보하는 데에도 돈이 들어야 한다고? 빌어먹을! 이런 경우가 어디있어? 이제 남은 돈도 다 써버렸으니까 앞으로는 재무청에 가서 가불받든가 해야만 하는데... 아무리 뼈 확보가 필수적이라고는 해도 더 이상의 돈을 쓸 수는 없어! 제길, 뼈 확보를 위해 사냥이라도 해야 할 판이로군... 그냥 이참에 데르플링거에게 시켜놓을까?' 그렇게 대부분의 기사대 대원들은 잡담에 여념이 없고 파우스트 역시 스켈레톤&무장 확보 문제에 대해서 고민에 빠져있을 때, 기사대 대원 중 안경을 쓴 학생 하나가 입을 열었다. "잠깐, 너희들. 무도회고 괴조고 아무래도 좋을 일이긴 한데, 일단은 기사대에 대해서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안 될까?" 기쉬의 옆반 학생이었던 레이나르라고 하는 소년이었다. 알비온 전쟁 때에는 수송대를 지휘했는데, 극히 혼란스러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부대를 잘 통솔했던공로로 표창을 받았던 적이 있다는 모양이었다. "궁중에서 지금 우리를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 '학생 기사놀이'래! 심지어 폐하의 유별난 취미 때문에 곤란한 지경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왔다고 궁중에서 일하시는 우리 숙부님이 한탄하시더라고!" "뭐, 뭐라고?!" "그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그 말에 대해서는 대원들 전원이 울컥하는 반응을 보였다. '내 생각에는 지극히 정당하고 당연한 평가라고 생각되는데... 하여간, 능력도 없는 주제에 자존심만 높아가지고는. 뭐, 하지만 일단 여기서는 말을 아끼자. 당연한 이야기라고는 해도 내가 괜히 그 이야기를 꺼내서 불평의 대상이 될 필요는 없지. 이런 일이 조금이라도 더 일어난다면 녀석들도 자신들의 문제점에 대해서 좀 더 자각하게 되는 정도 까지는 가능할테지. 일단 약 1사람 정도는 자신들의 문제에 대해서 깨닫기 시작한 모양이기도 하니 말이야.' 일단은 이번 일을 좀 더 두고보면서 적당한 때가 되면 활용할 생각을 한 파우스트는 이번에는 비아냥어린 말을 밖으로 내뱉는 것을 참았다. 속으로는 가차없었지만. "물론, 우리는 나름대로의 무훈을 세웠는지도 몰라. 하지만 역시 근위대라는 건 너무 파격적인 출세야. 역사적인 위대한 무인들과 비교당해서 애들 장난 취급을 당하는 건 어쩔 수 없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런 상황에 만족해야 한다는 건 터무니없는 소리지." "그래서, 네 생각은 어떻지?" 파우스트의 물음에 레이나르는 이렇게 대답했다. "진용을 강화하고 싶어. 기사단에 적합한 인원을 새로 보충하는 거야." "아, 그게 좋겠다. 확실히 지금 인원 만으로는 조금 부족한 감이 있지." "그런데, 적당한 인물이 있기는 해?" 대원들은 레이나르의 제안에 찬동하는 모양이었으나, 파우스트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는 그들을 어이가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적당한 인물을 새로 받아들이는 것도 물론 한 가지 방법이긴 하지만... 이게 그런다고 해결 될 문제냐? 그것 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잖아! 네놈들 평판이 나쁜 건 기사단 내에 특출난 인물이 없다는 이유 뿐만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네녀석들 개개인의 기량이 함량미달이기 때문이잖아? 그렇다면 가장 먼저 나와야 할 이야기는 자기들이 훈련을 통해 좀 더 쓸만한 녀석이 되어야 한다는 거 아니겠어? 왜 자기들이 변화해야 한다는 점에는 생각이 미치질 못하는거지? 제길, 그래도 이 녀석은 조금이라도 나은 줄 알았는데... 전언을 철회하기로 하지.' 파우스트가 자신을 어처구니없다는 시선으로 보고 있다는 건 알지도 못한 채, 레이나르는 그 사람의 이름을 말했다. . . . 그 이야기를 마친 후, 일동은 모두 도서관으로 들어왔다. 인적이 드문 그 공간을 돌아다닌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이 목표로 하는 인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체구가 작은 탓에 자신의 몸통만큼이나 크게 보이는 책을 열심히 읽는 그 인물은 푸른 머리카락의 소녀, 타바사였다. "저 녀석, 언제 돌아온 거지?" 기쉬가 의아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확실히 그녀는 퀴르케와 같이 게르마니아로 향했던 것이다. 하지만 레이나르는 이미 그녀가 돌아와 있다는 사실을 파악해둔 모양이었다. "이삼일 전에 돌아왔어. 저 애는 학원 내에서도 유일한 슈발리에니까 분명히 큰 전력이 될 거라고." "그렇다고는 하지만, 괜찮을까? 쟤는 여자애잖아?" "성별이 무슨 상관이야? 중요한 건 능력이지. 어차피 수정령 기사대의 입대 조건은 마법 학원의 학생이기만 하면 되는 거잖아?" "아니, 딱히 그런 식으로 입대 조건이 문서화된 건 아닌데. 그냥 어쩌다 보니까 이렇게 되었을 뿐이야. 여자애들은 별로 들어오고 싶어하지도 않았으니까 말이지." 자꾸 자신의 의견에 배치되는 말을 하는 기쉬에게 레이나르는 짜증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 진짜. 그럼 기쉬 넌 이대로 우리 수정령 기사대가 궁의 사람들로부터 햇병아리라고 무시당해도 좋다는거야?" "그, 그런 건 아니지만..." "잘 들어, 대장님. 그리고 너희들. 아무래도 너희들은 경영이나 평판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는 모양이지만 말이야, 우리 기사대가 존속하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가 필수불가결이라고! 나는 나름대로 우리 기사대가 궁정에서 무시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심사숙고 끝에 제안하고 있는 거야. 대안이 있다면 말해 봐." 아무래도 기쉬를 비롯한 다른 대원들은 레이나르에게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 모양이었다. 물론 파우스트는 그의 생각이 근본적인 부분에서부터 어긋난 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직은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비록 파우스트가 타바사에 대해서 잘 아는 것은 아니었지만, 레이나르의 제안에 그녀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지는 짐작하고도 남았던 것이다. '비아냥은 그 뒤에 해도 늦지 않아. 아니, 오히려 그 뒤가 더 적절하겠지. 게다가... 개인적으로도 그 녀석에게 볼 일이 있으니까 말이야.' 파우스트가 타바사를 수정령 기사대 대원으로 포섭하자는 레이나르의 제안에 대해서 별 다른 이견을 말하지 않았던 것은 레이나르의 제안에 대해서 예상되는 그녀의 반응이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그 자신이 타바사에게 볼 일이 있기도 하다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 그럼 가 볼까? 기쉬 너도 일단은 대장이니까 따라오라고." "그러기로 하지." "나도 가겠어." 지금껏 침묵하고 있던 파우스트가 입을 열자 레이나르와 기쉬는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라, 너도 가려고?" "글쎄, 나도 나 나름대로 볼 일이 있거든." "뭐, 그럼 상관없겠지." 그리하여 레이나르와 기쉬, 그리고 파우스트는 여전히 독서에 집중하고 있는 타바사에게 다가갔다. 타바사는 기본적으로 퀴르케를 제외하면 교우관계가 전무하다시피 했기 때문에 레이나르나 기쉬나 그녀에게 말을 걸기를 어려워했으나, 이내 기쉬가 기사단 대장의 입장이니 어쩔 수 없다는 듯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아, 안녕. 타바사." "..." 예상대로 타바사는 묵묵부답이었을 뿐만이 아니라 아예 그의 존재에 대해서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는 듯, 별 달리 반응이 없었다. 그런 타바사를 상대하기가 버겁다는 걸 느끼면서도 기쉬는 자신의 용건을 이야기했다. "너에게 한 가지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어." "..." "그, 그게... 이번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해서 새로운 근위기사대가 조직되었거든? 이름은 수정령 기사대라고 해." "..." "그, 그러니까... 너도 우리 기사단에 참가해주지 않을래?" "...나는 갈리아인." 몇 차례의 시도 끝에 타바사가 간신히 입을 열기는 했지만, 그건 짤막하게 단편적인 사실만을 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아마도 그 이유 때문에 수정령 기사대에 참가할 수 없다고 말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더 이상은 대화를 하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알게 모르게 느껴지는 타바사의 태도에 기쉬가 난처해하고 있을 때, 레이나르가 끼어들었다. "갈리아 사람이라고 해서 딱히 안 될건 없잖아? 뭣하면 객원기사로 참가해도 상관없어." "..." "아, 아니면 연금 액수를 늘리도록 교섭할 수도 있는 문제고..." "..." "부, 부탁이야! 제발 네 힘을 우리 기사단을 위해 협력해 줘! 넌 능력이 있잖아? 그러니까 그 능력을 세상을 위해 유익하게 쓰자는 거야!" 레이나르는 타바사를 설득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타바사의 대답은 냉정했다. "기사놀이에는 관심 없어." 너무나도 싸늘한 대답에 기쉬와 레이나르는 놀란 듯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지만, 파우스트는 어차피 이렇게 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으므로 딱히 놀라지는 않았다. 그 대신, 그 말을 남기고 이 자리를 뜨려는 타바사에게 그 자신의 '용건'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위해 말을 걸었다. "여어, 한 가지 좀 물어봐도 될까?" "...?" 타바사는 파우스트의 얼굴을 보더니 잠깐동안 누군지 모르겠다는 듯 갸우뚱거렸다. 하지만 이내 그의 복장과 기타 신체 조건들을 알아보고는 그가 파우스트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듯한 눈치를 보였다. 하지만, 파우스트가 자신에게 말을 거는 용건이 기쉬나 레이나르와 같다고 여겼는지 고개를 저었다. "이미 거절했어." "아니, 이 녀석들과는 요만큼도 상관이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용무야." "...?"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는 타바사에게 파우스트는 자신의 용건을 이야기했다. "듣자하니, 넌 퀴르케와 함께 게르마니아에 갔다 왔다고 했었지?" "...(끄덕)" "퀴르케는 아직 그 쪽에 있나?" "...(끄덕)" "그럼, 언제쯤 학원으로 돌아오지?" "몰라." "흐음... 뭐, 좋아.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면 하는 수 없지. 이걸로 내 용건은 끝났으니까, 갈 길이나 가 봐." "...?" 퀴르케의 행방에 대해서만 묻고는 그걸로 되었다는 반응을 보이는 파우스트에게 타바사는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이내 상관없다는 듯 발걸음을 돌렸다. 타바사가 떠난 뒤, 파우스트는 아직도 굳어있는 기쉬와 레이나르에게 말을 걸었다. 이 두 사람은 처음에는 타바사의 냉랭한 태도에 놀랐다가, 이후로는 파우스트의 의미를 파악할 수 없는 행동 때문에 당혹스러운 상태로 있었던 것이다. "자, 그럼 이걸로 볼 일은 끝났으니까, 기다리고 있는 대원들에게 돌아가야 겠지?" "그, 그렇기는 한데... 이럴거면 넌 왜 따라왔던 거야?" "마, 맞아. 타바사를 설득할 생각이 아니었던 거야?" 자신의 행동에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기쉬와 레이나르의 반응에 파우스트는 코웃음을 쳤다. "내가 언제 돕겠데? 난 나 나름대로의 볼일이 있다고 말했을 뿐인데?" "으음..." 분명 파우스트는 그렇게만 말했기 때문에 기쉬와 레이나르 역시 불만스러운 표정은 지었지만 딱히 뭐라고 반박하지는 못했다. 대원들에게 돌아가면서, 파우스트는 자신이 타바사에게 퀴르케의 행방에 대해 물었던 이유에 대해서 다시 생각했다. '지난 번 스켈레톤 워리어들에게 들려줄 무기의 성능 실험 결과에서 가장 품질이 우수했던 건 게르마니아에서 제작된 무기였어. 하지만 문제는 역시 가격이야. 내 연금만으로는 도저히 그 엄청난 금액을 충당할 수가 없어. 도박을 하면 어느 정도 자금 확충이 가능하긴 하지만, 그것도 어쩌다 한 번 사용할 수 있을 뿐이지 상습적으로 도박을 하다가는 괜한 의심을 사게 된다고. 그러니까... 가급적이면 게르마니아산 무기를 비교적 싸게 구입할 수 있는 연줄을 마련해 두는 편이 좋을거야. 그런 의미에서, 적어도 내가 아는 범위에서는 가장 적당한 인물이라 할 수 있는 녀석이... 바로 퀴르케지. 녀석은 게르마니아 출신의 귀족이잖아. 그것도, 트리스테인에도 가장 큰 세력을 자랑하는 명문 귀족가인 라 발리에르가와 국경을 사이에 두고 영지를 마주하고 있는 귀족가라고. 오랜 세월동안 반목해 왔다는 건 적어도 가문의 위세 만큼은 라 발리에르가에 견줄 바가 된다는 의미일테고, 국경 지대이다 보니 충돌에 대비해서 병사들을 무장시켜놓을 필요성 역시 가지고 있다고 봐야겠지. 그러니까, 아마 독자적인 무기 수급 루트 정도는 확보하고 있을거야. 이 점을 잘만 활용할 수 있다면... 그냥 무턱대고 트리스테인 내로 수입되는 게르마니아산 무기를 비싼 값에 구입하는 것 보다는 훨씬 효과적으로 필요한 무기를 입수할 수 있게 되겠지.' 요컨데, 파우스트는 퀴르케의 집안인 체르프스트가를 통해 게르마니아산 무기를 손쉽고 저렴하게 구할 수 있을 방안을 모색하고 있었던 것이다. 굳이 퀴르케를 선택한 것은 그녀가 파우스트가 접하기 가장 쉬운 게르마니아인이기도 했지만, 그 영지의 위치적인 이유로 인해 잘만 한다면 다른 게르마니아의 지역 보다도 질 좋은 무기의 수급이 용이할 수 있다는 점이기도 했다. 때문에 파우스트는 퀴르케와 접선할 필요가 있었고, 그래서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인 타바사에게 퀴르케의 행방에 대해서 물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퀴르케가 학원에 있지 않았으므로, 파우스트는 자신이 타바사를 찾아갔던 두 가지 이유 중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잠시 보류해야만 했다. 그 대신, 지금은 남은 한 가지의 이유를 활용해야 할 때였다. "어이, 기쉬, 레이나르. 타바사가 뭐래?" "흥, 싫댄다. 우리보고 기사놀이나 하는 녀석들이래." "땅꼬마 주제에... 우리가 기껏 굽히고 들어가니까 진짜 기고만장해져서는!" "뭐, 뭐야?" "진짜 그 녀석이 그랬다고?" "너무하잖아? 슈발리에 칭호를 받았다고 우릴 아주 우습게 보는 모양이잖아?" 타바사의 포섭에 대한 대원들의 물음에 기쉬와 레이나르는 상당히 불쾌하다는 듯 결과를 보고했고, 나머지 대원들도 그런 타바사의 태도에 분개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바로 이 때, 파우스트가 나서서 모두에게 들으라는 듯 이야기했다. "그래, 이제야 너희들이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확실히 알겠냐? 네놈들을 우습게 보는 건 궁 내의 사람들 뿐만이 아니라는 거야. 네녀석들은 그 푸른 머리카락의 꼬맹이와 같은 학원의 학생들에게도 철저하게 무시당하고 있다는 이야기지. 인정하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이게 네놈들의 현실이다." "크으으으...!" "기, 기분나쁘기는 한데... 타바사 그 녀석도 그렇게 말했다니까..." "그야 뭐..." 파우스트의 비아냥에 대원들은 기분나빠하면서도 뭐라고 반박하지는 못했다. 실제로 타바사도 그들을 얕보는듯한 발언을 했기 때문이었다. 파우스트는 타바사가 대충 이런 식으로 반응할 것을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이용하려고 했던 것이다. 단순히 궁중에서만 햇병아리 취급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학생의 입장에서 봐도 그들이 한심하게 비친다는 것을 그들에게 쏘아붙여줄 예시로써 타바사의 발언을 활용하고자 했다는 이야기였다. 파우스트는 레이나르에게 눈길을 줬다. "아까 네녀석은 기사단의 평판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고 했지? 그래, 그 말은 맞아. 하지만, 평판을 올리기 위해서 외부 인물을 영입하는 정도 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면, 그건 너무나도 순진하기 짝이 없는 크나큰 착각이라고 밖에는 뭐라고 할 말이 없어. 왜냐하면, 기사단은 말 그대로 단체이기 때문이라고! 단체의 평판은 구성원 개개인의 평균적인 능력이 가장 크게 좌우되는 법이지, 특정한 한 두 사람의 능력 만으로 평가가 달라지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아! 즉, 네녀석들 개개인이 상당한 수준의 실력을 갖추지 않는 한, 새롭게 뛰어난 실력을 가진 인물을 기사단에 영입한다고 해서 평판이 나아지는 일 따위는 절대로 기대조차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라고!" 아까 전까지만 해도 기세등등하게 자신의 의견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던 레이나르는 파우스트의 그 이야기를 듣고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파우스트는 시선을 그에게서 다른 기사대 대원에게도 돌렸다. "이 무사안일주의에 쩔었다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이야기를 꺼낸 녀석은 분명히 레이나르야. 하지만, 네녀석들이라고 해서 그 비난의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 천만에! 아까 전, 네녀석들은 레이나르의 헛소리에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못했어. 그건, 네놈들 역시 이 녀석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뜻이잖아? 안 그래?" 이번에는 다른 기사단의 대원들도 힘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그런 대원들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파우스트는 계속 이야기했다. "분명히 말해두는데, 너희들이 궁 내에서나 학원 내에서나 무시당하는 이유는 다른 것 때문이 아니야. 오직 한 가지 뿐이라고. 명색이 근위기사대라고는 하지만, 네녀석들 개개인이 도저히 근위기사대라고 불리우기에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실력이 미달되고 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지. 어디 극명한 예를 들어보기로 할까? 네녀석들도 알겠지만, 현 수정령 기사대의 대장인 기쉬는 작년 나와의 결투에서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간단하게 패배했어. 그 당시 내가 썼던 기술은 기껏해야 골렘 제작과 저주 2개 뿐이었는데도 말이야. 하지만, 근위기사대 중 하나인 마법 위사대의 그리폰대 대장이었던 와르드라는 놈과 싸웠을 때는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고. 그 자식은 진짜로 상당한 능력을 가진 실력자였거든. 난 그 자식을 도발하기 위해서 네크로맨시를 비롯한 몇 가지 기술을 일부러 사용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정말로 죽을 뻔 했어. 간신히 패퇴시키기는 했지만, 지금도 그 상황만 떠올리면 아직도 심장이 오그라드는 기분이라고." 기쉬가 파우스트에게 결투를 신청했다가 압도적으로 패했던 사실은 모두들 다 알고 있었지만, 파우스트와 와르드의 대결에 대해서는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그들은 여기 있는 사람들 중 그 상황을 유일하게 목격했던 기쉬가 고개를 끄덕인 뒤에야 파우스트의 말에 납득했다. "물론, 애시당초 네놈들은 평범한 학생들 중에서 선발되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실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점은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르지. 출신성분 자체가 이렇다보니 네녀석들이 단기간 내에 그런 수준의 실력자가 될 수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않을거야. 그렇다고는 해도, 모처럼 조직된 기사대의 일원이 된 이상, 언제까지나 그런 평가를 받고 싶어할 녀석은 이 중에서 아무도 없겠지?" "그야 물론이지!" "두 말하면 잔소리라고!" "언제까지나 이런 수모를 당할 순 없잖아!" 오기가 생긴 대원들은 지금의 상황에 대해서 결코 만족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 대원들의 반응에 대해서 파우스트는 입가를 비트는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나오셔야지. 지금 네녀석들이 기사놀이의 수준에서 벗어나기 위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은, 바로 훈련이다. 훈련을 통해 네놈들이 직접 변하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기사놀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테니까 말이지. 여기에 대해서 이견이 있나?" "이견이라는 건 아닌데, 좀 물어볼 게 있어." 기쉬가 손을 들고는 파우스트에게 질문했다. "뭐지?" "어떤 훈련을 할 거야? 솔직히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런지 잘 모르겠거든..." "좋은 질문이로군. 물론 네녀석들이 근위기사대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을 수준이 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훈련을 장기간에 걸쳐서 받아야겠지. 각자가 전투시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의 활용법이라거나 전투에 대한 기본 요령, 팀 워크 등등... 고려해야 할 부분은 한 두 가지가 아닐거야. 하지만, 다른 모든 훈련을 제쳐두고 네녀석들이 반드시 받아야만 하는 기초적인 훈련은 딱 한 가지다." "그게 뭐지?" "기초 체력의 강화. 이거야말로 모든 훈련의 기본이야. 체력이 모자라면 그 어떠한 것도 가능하지 않다고." 파우스트가 라스마로부터 수련 시절동안 받았던 정규 과목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체력의 단련은 기본중의 기본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때문에 파우스트 역시 공부를 하거나 실습하는데 사용되는 이외의 시간에는 틈틈히 체력의 단련을 했었다. 때문에, 파우스트는 근력에서는 평균미달이긴 했지만 체력 만큼은 평균 이상의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으며, 이는 이후 그가 실전을 겪을 때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최소한 2달 동안은 체력강화에만 집중할 생각이야. 매일 아침과 점심식사 후, 그리고 저녁마다 베스트리 광장을 뛰면서 도는거지. 일단은 네녀석들의 체력 상황을 봐 가면서 초기 도는 횟수를 설정한 다음, 그 이후로 차차 늘려나갈 계획이다. 알겠어? 여기에 대한 이의는 받아들이지 않을거다." "자, 잠깐만?!" "그건 너무한 거 아니야?!" "너무하기는 뭐가? 그 정도도 안하면서 근위기사대가 되겠다고? 꿈도 야무지네. 잔말말고 지금부터 뛰기나 해!" 약간은 짓궂은 표정으로 선언하는 파우스트에게 상당수의 대원들은 항의했으나, 그들의 항의는 기각되었다. . . . 수정령 기사대 전원이 숨을 헐떡거리면서 베스트리 광장 주변을 뛰고 있을 무렵,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 타바사는 침대 위에 까마귀 한 마리가 앉아서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아마도 갈리아 왕가에서 그녀에게 밀서를 전달하기 위해서 보낸 전서 까마귀인 모양이었는데, 이상하게도 다리에 밀서가 묶여있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를 타바사가 의아하게 여기기 시작했을 무렵, 갑자기 까마귀의 목이 떨어졌다. 목이 빠진 틈에 돌돌말린 편지가 들어있는 것으로 봐서 이건 단순한 까마귀가 아니라 까마귀의 모양을 한 정교한 가고일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목이 떨어지는 방식으로 개폐된다는 점은 참으로 악취미가 아닐 수 없었다. 까마귀 모양의 가고일의 목에서 편지를 꺼내어 읽은 타바사의 표정은 살짝 찌뿌려졌다. 언제나 갈리아 왕가로부터 일을 받을 때마다 속으로 불만을 품지 않았던 적이 없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평소와는 달리 다소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당일 밤, 타바사는 실피드를 타고 편지에 쓰여진 장소로 향했다. 어떤 임무를 수행할 것인지에 대해서 브리핑을 받기 위함이었다. 다만, 지금의 목적지는 이례적으로 갈리아 왕궁이 아니었다. 지금까지는 갈리아 왕궁으로 가서 그녀의 사촌언니이자 북화단 경호기사단의 단장을 맡고있는 이자벨라로부터 수행해야 할 임무를 지시받았었지만, 어째서인지 지금은 트리스타이나의 한 술집이 약속 장소가 되었던 것이다. 브리핑을 받기로 한 술집은 트리스타이나의 티크토네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티크토네 거리는 저속한 술집이나 유흥업소, 그리고 도박장들이 늘어선 장소로, 이제 15세가 거의 끝나가는 나이보다도 더 어려보이는 타바사가 있기에는 상당히 어울리지 않는 곳이었다. 실제로 길을 거나니는 주정뱅이들이나 밤거리의 여자들은 비록 귀족이라고는 하지만 너무나도 어린 소녀가 이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이상하게 바라보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타바사는 그런 주변의 시선은 전부 무시하면서 약속 장소인 술집의 내부로 들어갔다. 티크토네 거리에서도 비교적 고급스러운 축에 속하는 술집으로, 귀족이나 기사로 보이는 사람들이 상당수 드나들고 있었다. 거기에 자리를 잡고서는 얼마동안 앉아 있으려니, 누군가가 타바사에게 말을 걸어왔다. "늦어서 미안하게 되었네." 목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는 후드가 달린 후브를 눌러쓴 여자가 서 있었다. "만나서 반가워, 북화단 기사 타바사님." 눈짓으로 자신에게 인사하는 상대에게 타바사도 눈에 보일랑 말랑하는 수준으로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의 의문점을 입에 담았다. "어째서?" 어째서 갈리아가 아닌 트리스테인에서 명령을 내리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표시하는 것이었지만, 그런 내용을 모두 전달하기에는 문장이 지나치게 축약되어 있었다. 하지만, 상대는 그 이야기를 알아들은 듯 타바사의 의문에 간단히 답했다. "그야 이번 임무의 무대는 이 나라니까." "..." 여자는 후드를 살짝 들추었고, 그러자 후드에 가려져있던 얼굴의 절반 위쪽이 드러났다. 가늘고 긴 눈, 찰랑거리는 검은 머리카락의 사이로 엿보이는 하얀 피부에는 룬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허무의 사역마 중에서도 신의 두뇌라 불리우는 묘드니트니른이었던 것이다. "너와 나의 주인께서는 이렇게 생각하고 계셔. 이 세계에 단 네 기만이 존재하는 특별한 용기사들끼리 서로 싸우도록 하고 싶으시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실지는 잘 모르시겠다는 모양이신가봐. 뭐, 그 분이라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든지 간에 신경쓰지 않고 단순한 여흥으로만 여기실 분이겠지만 말이야." "..." 타바사가 그 비유를 이해하기에는 배경지식이 너무나도 부족했기 때문에 상대가 대체 무슨 의도로 이런 말을 하는지 의아해할 수 밖에 없었다. 그저 상대가 다음 이야기를 하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다가, 이번에 그 용을 사로잡으시기로 한 모양이셔. 그런데, 그 용에는 강력한 호위가 붙어있지. 네 역할은 그 호위를 퇴치하는거야." "호위를 퇴치?" "너도 잘 아는 인물이야."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면서 묘드니트니른은 타바사에게 한 장의 종이를 건내주었다. 그 종이에 그려진 초상화를 본 타바사는 잠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가 거기에 같이 적힌 이름을 보고는 놀란 모양인지 눈을 크게 떴다. "어머, 놀랐어? 하긴, 최근에 갑자기 외모가 달라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번에 학원에 돌아간 뒤로 한 번 정도도 보지 않았어?" "..." "뭐, 아무래도 상관없지. 난 네게 명령만 전달하면 되니까. 제법 힘든 임무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일단 임무를 성공한다면... 커다란 보수가 기다리고 있지. 바로 네 어머니에 관한거야." "...!"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되자 타바사의 동요는 그 정도가 더 심해졌다. "네 어머니 말이야, 듣자 하니까 독약 때문에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지? 심지어 자신의 딸 조차도 알아볼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면서? 후, 가엽게도..." "..." "하지만, 네가 이번 임무에만 성공한다면 너도 더 이상 거기에 대해서 고심하지 않아도 될 거야. 이번 임무가 성공했을 때 주어지는 보수가 바로... 네 어머니의 마음의 병을 치료해주는 약이야." "..." 타바사는 입술을 깨물면서 가볍게 몸을 떨었다. 묘드니트니른을 노려보는 그 눈에는 명확한 분노와 적개심이 드러나 있었다. 평소 타바사가 보이는 무감정한 모습을 생각하면, 그녀의 지금 반응은 무척이나 격정적인 수준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물론, 타바사의 입장에서는 그런 격렬한 감정이 들 수 밖에 없었다. 애당초 이번 일을 의뢰한 사람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것도 모자라서 자신까지 해하려고까지 했었던 장본인이었다. 비록 자신을 감싸려던 어머니의 희생으로 인해 자신을 해코지하는 데에는 실패했다고는 하지만, 독약으로 인해 어머니의 마음은 병들었으며 자신은 11살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무려 5년 동안이나 그 자의 명령에 따라 힘들고 더러운 뒷처리 일을 해야만 했다. 어머니의 목숨이 달린 일이었으므로, 위에서 내려오는 명령이 아무리 힘들고 목숨까지 걸어야 할 정도로 고된 것이라 해도 타바사는 거절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그렇게 지난 5년을 감내해 왔는데, 이제는 또 다시 그 어머니를 미끼로 하여 자신을 이용하려고 하는 원수의 비열함에 치를 떨지 않을 수 없었다. 가증스러운 원수의 손아귀 안에서 이용당해야만 하는 자신의 처지도 불만이었지만, 이번 임무의 내용 자체도 타바사의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꺼려지는 것이었다. 이번 임무에서 제거해야 할 상대는 묘드니트니른의 말 대로 그녀 역시 면식이 있는 사람이었다. 개인적으로 그렇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상대는 아니었지만, 그가 없었더라면 죽었을지도 모르는 일을 몇 번이나 경험했다는 생명의 빚이 있기도 했고... 무엇보다 자신의 능력 만으로 대적이 가능하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실력을 갖춘 상대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설사 이번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다 하더라도 자신에게 제공되기로 한 보상이 사실대로 이행될 것이라고 보장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설령 빈말이라고 해도 자신의 어머니가 앓는 마음의 병이 치유된다는 이야기에는 도저히 솔깃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지금껏 타바사가 모든 굴욕을 감내하면서 목숨을 부지해왔던 것은 '원수에 대한 복수'와 '어머니의 회복'이라는 두 가지의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아무리 악마의 유혹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걸 그냥 무시한다는 것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가혹한 처사였다. 그리고, 보수가 참인지 거짓인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임무의 보수에 어머니가 언급되었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때 주어지는 보수가 어머니의 회복이라는 것은... 반대로 타바사가 임무에 실패했을 경우 어머니의 안전에 뭔가 불안한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타바사로서는 인간적으로 갈등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타바사의 동요를 알아차렸는지 묘드니트니른은 잔혹한 웃음을 입가에 띄우면서 타바사를 재촉했다. "어머나, 천하의 북화단 기사님이 아는 사람이라고 해서 사적인 감정을 앞세우겠다는 거야? 잘 생각해 보라고. 이건 네 어머님의 마음을 되찾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니까." . . . 일주일이 지난 뒤, 다시 허무의 요일이 찾아왔다. 신입생 환영회를 겸하는 슬레이프니르의 무도회가 열리는 날이었기 때문에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마법 학원의 학생들은 거기에 대해서 여기저기에서 술렁이고 있었다. 주로 이번 무도회에서 자신들이 어떤 '가장'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던 것이다. "넌 대체 누가 될 거야?" "글쎄, 어디 맞춰보지 않을래?" "난 말이지..." 아침식사 시간의 식당에서도 이런 식의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었다. 이런 주변의 반응은 아침부터 베스트리 광장을 13바퀴 가량 돌아야 했던 수정령 기사대의 군기(...)에도 영향을 끼쳤다. 교관 역할을 담당하게 된 파우스트 역시 그들과 함께 베스트리 광장을 뛰었으므로 뛰는 동안에는 그에 대해서 차마 불평을 입에 담을 수도 없었지만, 일단 아침식사 시간부터 주변이 슬레이프니르의 무도회에 대한 이야기로 활기를 띄우자 그들 역시 이런 분위기에 젖어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결국 아침식사가 끝난 뒤, 수정령 기사대를 대표해서 기쉬가 파우스트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저기, 파우스트. 오늘 하루 동안은 훈련을 쉬면 안될까?" "훈련을 쉬자고? 뭣 때문에?" "그, 그러니까... 오늘은 슬레이프니르의 무도회가 열리는 날이잖아? 그러니까 하루 정도는 훈련을 쉬어도..." "하아? 그게 무슨 소리야? 이제 너희들은 고작 1주일동안 체력 단련을 했을 뿐이잖아. 훈련 시작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부터 이렇게 게으름을 부리겠다고?" "아니... 딱히 게으름을 부리겠다는 건 아니지만..." "훈련을 빼먹자는게 게으름을 부리는게 아니라면 대체 뭐라는 거야? 원래 훈련이라는 건 규칙적으로 꾸준하게 하지 않으면 금방 정신 상태가 해이해진다고." 자신의 제안을 추호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보이는 파우스트에게 기쉬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으음... 그야 네 말이 맞기는 해. 그치만... 오늘은 1년에 딱 한 번 있는 슬레이프니르의 무도회 날이야. 다들 그것 때문에 몇 주일동안 무척이나 큰 기대를 품고 있었는데... 훈련 때문에 참가하지 못하게 된다고 생각하면 정말로 아찔해진다고. 정말로 크게 불만을 품는 녀석이 나올지도 몰라. 어떻게 좀 타협안을 낼 수는 없을까?" "타협안?" "그래. 물론 훈련이 중요하다는 건 알지만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조금은 사정을 봐 줘도 될 거라고 생각해. 나도 그렇지만 이번 무도회를 무척이나 기대하는 녀석들도 많기 때문에, 난 대장으로서 대원들의 의사를 존중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나도 그렇지만'이라... 대원들의 의사라기 보다는 네 의사라고 생각되는데?" "아, 아니... 물론 내 의사도 섞여있기는 하지만, 일단은 대원들과도 충분히 이야기를 했어. 그러니까, 지금의 내 의사는 대원들의 의사와 같은 거야!" 파우스트는 기쉬에게 게슴츠레한 시선을 주면서 그의 타협안에 대한 질문을 했다. "헤에... 그래서, 네가 말하고자 하는 타협안이라는 건 뭐지?" "오늘 하루 동안은 남은 훈련을 하지 않는 것." 뻔뻔스럽게 이야기하는 기쉬에게 파우스트는 웃기지도 말라는 반응을 보였다. "지금 장난 쳐? 그건 그냥 단순히 네 의견만을 내세운 것 뿐이잖아? 그게 뭐가 타협안이라는 거야? 타협이라는 건 네놈의 의견과 내 의견의 사이에서 적당한 절충안을 찾는 과정을 이야기하는 거라고 내가 친절하게 설명까지 해 줘야겠어?" "으윽... 무, 물론 타협이라고 말해놓고 내 의견만을 내세운 건 문제가 있기는 해. 하지만, 그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너도 네 의견만을 주정하려고 하는 거 아냐?" "...호오. 설마 네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줄은 몰랐는데..." 파우스트는 기쉬가 의외로 논리적인 반박을 하자 파우스트는 다소 놀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 좋아.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 이상, 그럼 피차간에 의견 조정을 해 보기로 하자고." "그러자고." "일단 내가 훈련을 계속 하자고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이유를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봐. 그러니까, 네놈이 무도회를 위해서 훈련을 쉬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서 어디 이야기를 해 보라고." "그럴게. 일단, 무도회는 조금 이른 저녁부터 시작하는 데다가 무도회장에 식사가 마련되기 때문에, 식당은 폐쇄된다고. 식사를 위해서라도 일단 무도회장에는 들어갈 수 밖에 없고... 기왕 무도회장까지 가는 건데 참가하지도 못한다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이지. 거기에다, 저녁에 훈련을 했다가는 다들 지쳐서 무도회에 제대로 참가하지도 못할거야." "그게 저녁 훈련을 빼먹어야만 하는 이유라... 뭐, 그건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그게 점심식사 이후에 있을 훈련까지 그만두어야 할 이유는 되지 않을텐데?" "으음..." 파우스트의 지적에 잠시 고민하던 기쉬는 뭔가 생각이 난 듯 중얼거렸다. "아, 그러니까... 그, 그래! 가장을 해야 해! 이번 슬레이프니르의 무도회에서는 반드시 가장을 해야만 한다고!" "가장?" "그래!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가장을 해야만 하니까, 그걸 위해서는 미리부터 준비를 해야 한다고!" "준비시간이 얼마나 걸리는데?" "그, 그러니까... 점심식사를 한 이후에 시작하더라도 저녁 까지는 걸릴거야." 파우스트는 미심쩍다는 시선으로 기쉬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정말로?" "그, 그렇다니까?" 기쉬는 그렇다고 주장했지만 그의 태도에서 수상쩍은 기운을 느낀 파우스트는 그의 눈에 계속해서 의혹으로 가득 찬 시선을 줬다. 결국... "..." "..." "..." "...미안, 내가 잘못했어. 점심식사 뒤의 훈련은 받을게. 그러니까... 응?" ...더 이상은 견디지 못한 기쉬는 항복을 선언했다. 그가 점심식사 뒤의 훈련을 순순히 받겠다고 한 것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파우스트가 저녁의 훈련까지도 강행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파우스트는 그런 기쉬에게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생각같아서는 저녁의 훈련은 그냥 넘어가주려고 했는데, 생각이 바뀌었어. 감히 내게 씨알도 먹히지 않을 거짓말을 해?" "미, 미안해! 하, 하지만 제발 저녁의 훈련 만큼은 넘어가 주라. 응? 부탁이야!" "아, 진짜! 달라붙지마! 기분 나쁘다고!" "이건 나의 생각만이 아니라 우리 수정령 기사대 전원의 바람이라고! 제발...!" "이, 일단 다리부터 놓고 이야기 해!" "시, 싫어! 네가 저녁 훈련을 그만두겠다고 말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놓지 않을거야!" "이, 이 자식이! 네가 먼저 날 속이려고 거짓말까지 했잖아! 그런 주제에 이제와서 이 따위로 행동하기야?" "그, 그건 물론 내 잘못이야! 그러니까 네가 거기에 대해서 나를 매도하더라도 뭐라고 하지는 않겠어! 하지만... 지금의 난 수정령 기사대 전원의 의사를 대표하고 있단 말이야! 대원 전원이 내 결정에 따라 웃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이것 만큼은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고!" "헛소리 작작 해! 네가 언제부터 그렇게 녀석들을 아꼈다고 그래?" 이런 식으로 한동안 기쉬가 자신의 다리까지 붙잡으면서 억지를 부리는 바람에 완전히 질려버린 파우스트는 크게 한숨을 쉬면서 어쩔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하아, 진짜 너도 징하다... 알았어. 알았다고! 저녁의 훈련은 없는 걸로 해! 그 대신, 점심식사 이후의 훈련의 엄청나게 높일거야! 이걸로 교섭은 끝이다." "아, 알았어...!" 이런 식으로 극적인 타협안(...)을 얻어내는 데에는 성공한 기쉬였으나... 점심식사 이후 행해진 훈련의 강도는 평소의 이상이었다. 파우스트는 전원이 지쳐 실신할 때까지 그들을 달리게 만들었고, 결국 기사대 전원이 뻗어버려 의무실에 실려가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 뒤에야 파우스트는 루이즈의 방으로 돌아갔다. "흐음, 요즘 많이 바쁘신가봐?" 문을 열자마자 루이즈의 비아냥거리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다짜고짜 루이즈에게 그런 말을 듣자 파우스트는 표정을 약간 구겼다. "내게 뭔가 불만이라도 있어?" "딱히. 그보다 너도 참 의외야. 언제는 수정령 기사대와는 관련되고 싶지 않다고 투덜거리더니, 지금은 직접 그 녀석들의 훈련까지 시키고 있잖아? 안 그런 척 하더니, 결국에는 너도 그 전쟁놀이에 맛들이기라도 한 거야?" "그럴리가 있겠어? 내가 그 녀석들을 훈련시키는 건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야. 비록 본의는 아니었지만 기쉬 녀석이 부탁하는 바람에 일단 고문 역할을 떠맡게 되었잖아? 그렇게 된 이상 어느 정도라도 내가 활동을 하지 않으면 무슨 소리를 듣게 될런지도 모를 일이라고. 거기에다, 난 표면적으로는 녀석들을 훈련시킨다는 명분을 내세우고는 있지만, 실은 나 자신의 단련까지도 같이 포함하고 있는 거야. 녀석들의 훈련은 거기에 대한 단순한 덤 같은거지." "아, 그러셔?" 파우스트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루이즈는 여전히 불만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는 파우스트의 이야기를 납득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다만, 그의 본심이야 어쨌든지 간에 그가 수정령 기사대에게 시간을 빼앗기고 있는 것은 분명했으며, 그 때문에 자신이 파우스트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더 줄어들었다는 사실 때문에 서운했던 것이다. 가뜩이나 다시 만난 뒤로 파우스트가 자신에게 다소 서먹서먹하게 대하는 것도 그랬지만, 얼마 전 앙리에타가 파우스트에게 마음이 있는 것 같은 행동을 보였던 것 때문에 루이즈는 무척이나 불안한 상태에 놓여있었다. 그 당시에는 그냥 자신의 착각이라고 생각하려고 했지만, 역시나 마음에 걸리는 건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파우스트가 수정령 기사대의 일 때문에 다시 시간을 빼앗기자 루이즈로서는 쓸쓸한 기분까지 들었고... 그래서 파우스트가 수정령 기사대의 훈련을 봐 주는 것에 대해서 내심 불만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오늘 저녁에도 훈련을 시킬거야?" "아니, 오늘 저녁에 훈련은 없어. 녀석들이 어지간히 그 슬레이프니르의 무도회인가 뭔가에 참가하고 싶은 모양이더라고." "어, 정말?" 저녁에 훈련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루이즈는 살짝 안도했다. 그렇다면 저녁의 무도회에서 파우스트와 시간을 보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럼 너도 거기에 참가할거야?" "뭐... 개인적으로 그런 행사에는 관심이 없지만, 그 무도회 때문에 식당이 폐쇄된다면서? 그러니까, 일단은 저녁식사를 위해서라도 얼굴은 내밀어야겠지. 그렇다고 시작할 때부터 홀에 있겠다는 건 아니고, 나중에 식사거리가 들어온 뒤에야 갈 생각이지만 말이야." "그, 그렇네... 그럼, 가장은 어떻게 하게?" "안 할거야. 애당초 난 평민 출신이라 무도회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하고, 별로 거기에 대해서 즐기거나 할 생각도 없어. 그런데 내가 뭐하러 가장까지 해?" "그렇구나..." 파우스트가 식사를 위해서라도 무도회장에 가기는 하겠지만 가장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과 동시에 그가 이 '슬레이프니르의 무도회'에 대한 지식이 없다는 점을 알게 된 루이즈는 약간 장난기가 발동했다. 다른 사람으로 '가장'한 자신이 파우스트를 놀래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럼... 어차피 무도회장에 오기는 한다는 이야기지? 그 뒤로는 달리 할 일도 없는거고?" "그야 그렇지뭐. 일단 '필요하기는 하지만 귀찮은 일'은 전부 데르플링거 녀석에게 떠맡겨놓은 상태거든." "응? 그게 무슨 일인데?" "뼈 확보 말이야. 원래는 식당에서 어떻게든 조달하려고 했었는데, 스프 국물을 우려내야 한다면서 억지를 부리기에 결국 돈까지 내면서 뼈를 사야만 했다고. 후우, 덕분에 남은 돈을 거기에 다 쏟아붓고도 17기 정도에 해당하는 뼈 밖에 확보하지 못했지... 쳇, 인심도 야박하기는. 이제 더 이상 뼈 확보에 돈이 드는 건 피하고 싶었기 때문에, 생각다 못해 결국 사흘 전 데르플링거에게 사냥을 다녀오라고 시켰어. 오늘 밤까지는 돌아오라고는 했는데, 얼마나 확보할 수 있을런지는... 좀 미지수로군." "아, 그래서 요 며칠동안 데르플링거를 보지 못했던 거구나... 음, 어쨌든, 오늘 저녁 이후에는 달리 일도 없다는 거네?" "그렇다고 몇 번이나 말해야 해?" 투덜거리는 파우스트에게 루이즈는 약간 입술을 삐죽거리면서 말했다. "그럼, 무도회장에서 분장한 나를 찾아보는 건 어때? 별로 무도회에 참가하고 싶지 않을지는 몰라도 달리 할 일도 없다면 약간이라도 가장 무도회를 즐겨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뭐... 별로 상관은 없지만. 네 가장 정도는 금방 알아차릴 수 있을 것 같은데? 학생들 중에서도 너 처럼 조그만 여자애는 거의 없잖아?" "조, 조그맣다고 말하지 마! 게다가, 마법 학원에서의 가장은 결코 만만한 게 아니라고? 너라고 해서 그렇게 쉽게 찾을 순 없을껄?" "호오, 그래?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약간은 어울려줄 수도 있지. 심심풀이 정도는 되었으면 좋겠군 그래." "흥, 날 못찾으면 벌을 줄 거야." "벌은 무슨." 가뜩이나 또래에 비해서 발육부진인 자신의 몸에 대해서도 열등감을 가지고 있던 루이즈였기에 그런 부분을 별로 고려하지도 않는 것 같은 파우스트의 무신경한 발언에는 약간 발끈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오늘 저녁에는 파우스트가 자신과 어울려줄 거라는 생각에 약간은 들뜬 마음이 들었다. . . . 저녁이 되자, 마법 학원의 보물고에 있던 '진실의 거울'이 2층 댄스 홀의 입구에까지 끌려왔다. 이 마법 도구야 말로 이번 슬레이프니르의 무도회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물건이었다. 왜냐하면, 이 슬레이프니르의 무도회에서의 '가장'이란, 이 마법의 거울을 이용하여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변신'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거울의 주변에는 검은 커튼이 사방에 드리워져있어 지금 누가 모습을 바꾸고 있는지 밖에서 보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다. 커튼 옆에는 가면을 쓴 여성이 댄스 홀로 들어가려는 학생들을 거울로 유도하고 있었는데, 가장을 하지 않고 실수로 댄스 홀에 바로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하여 배치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루이즈 역시 줄을 선 상태로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으음... 난 누구로 가장하게 될까? 대충 짐작이 가기는 하지만... 그보다, 파우스트 녀석이 날 찾을 수 있을지도 궁금한걸. 물론 너무 쉽게 찾아내서 그 녀석이 기고만장해하는 모습을 보는 건... 조금 자존심이 상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예 찾지 못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조금 씁쓸하니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어느 새 루이즈의 차례가 되었다. 커튼 속으로 들어가자 높이가 2m 가량 되는 커다란 전신 거울이 서 있었다. 테두리에 아무런 장식도 없는 심플한 디자인의 거울의 위에는 얇은 천이 덮여져 있었다. 커튼 밖에서 학생들을 유도하던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의 이상적인 모습을 떠올리는 겁니다. 거짓으로 속이려고 하더라도 아무런 소용이 없어요. 이 거울은 당신의 깊고 깊은 마음 속까지 들여다본 뒤, 그 속에서 당신이 진실로 바라는 이상적인 대상의 모습으로 바꿔주는 거니까요. 자, 심호흡을 하고 마음의 준비가 되었으면 거울의 천을 걷으세요." 루이즈는 침을 꿀꺽 삼킨 다음 천을 걷어올렸고, 그러자 거울로부터 밝고 아름다운 무지개빛이 그녀를 향해 비추더니, 이윽고 그 빛이 사라지고 커튼의 내부는 다시 어둑어둑한 공간으로 되돌아갔다. 밝은 빛 때문에 눈이 부셨던 루이즈는 감았던 눈을 뜨고는 거울을 들여다봤다. 거울속에 있는 상대는 루이즈와 같은 핑크빛 머리카락과 다갈색의 눈동자를 가진 여성이었지만, 루이즈는 아니었다. 루이즈보다 좀 더 키도 크고 체형도 여성적인데다 무척이나 온화하고 부드러운 인상을 한 스물 서너살의 그 여성은... 루이즈의 둘째 언니인 카틀레아였다. '대충 이럴 거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역시 카틀레아 언니가 되었네. 근데, 이래가지고는 파우스트가 날 금방 알아차릴 것 같은데... 뭐, 그래도 상관없으려나...' 그렇게 루이즈가 잠깐동안 가슴에 손을 얹고 서 있으려니, 거울을 둘러싸고 있던 커튼 한쪽 구석이 열리면서 조금 전의 가면의 여성이 고개를 내밀었다. "저기... 아직 안 끝나신 건가요? 뒤에서 학생들이 기다리고 있답니다." "아, 죄송해요!" 혼자서 생각에 잠겼던 루이즈는 살짝 고개를 숙이면서 사과를 한 뒤 제빨리 커튼 밖으로 나가 홀로 들어갔다. 그런 루이즈의 모습을 확인한 가면의 여성은 가면 속에서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미소를 지었다. '흐음... 저게 저 녀석의 가장한 모습이란 말이로군. 이걸 알 수 있게 되었으니 잠입한 보람은 있었어. 가장한 뒤의 모습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이번 작전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걸. 물론 내 능력을 사용한다면야 이 진실의 거울의 효과를 취소시켜 가장한 녀석들의 모습을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게 만들 수도 있겠지만, 그랬다가는 이를 이상하게 여긴 나머지 괜한 소동이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니까... 이게 더 현명한 방법이겠지.'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던 여성의 가면으로 가려진 이마에는 허무의 사역마의 룬이 새겨져 있었다. 이번 슬레이프니르 무도회라는 축제로 인해 인해 긴장이 풀리게 될 학원측의 반응을 이용한 음모를 위해 미리부터 잠입해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정을 알 리가 없는 루이즈는 홀에 있는 사람들과 거울을 통해 들어오는 사람들이 누구로 가장했는지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홀 내부에는 초상화로만 전해내려오는 전설속의 용사나 위인, 유명한 명사나 귀부인 들의 모습이 가득했다. 이따금씩 클래스 메이트의 모습도 보이긴 했지만, 아마 그 본인은 아닐 터였다. 앙리에타의 모습도 몇 이나 있었기 때문에 루이즈는 살짝 쓴웃음을 지었다. 다만, 아무리 고개를 돌려봐도 파우스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파우스트는 음식이 홀 내부로 들어온 뒤에야 오겠다고 말했었기 때문에 루이즈도 그 본인을 찾는게 아니라 그로 분장한 사람이 있는지를 찾으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무도회가 시작할 시간이 되어 거의 모든 학생들이 홀에 모인 이후에도 파우스트로 분장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으음, 아무도 파우스트로 가장을 한 사람은 없네. 그래도 그렇게나 큰 공적을 세운 데다가 학생들 중에서도 그 녀석을 제법 동경하던 녀석들도 있었던 것 같았는데, 아무도 그로 가장하지 않은 모습을 보니까 조금은 섭섭하달까...' 루이즈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홀에 들어온 학원장 오스만이 단상에 올랐다. 홀 내부를 돌아보면서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홀에 모였다는 사실을 확인한 그는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제군들, 다시 한 번 인사를 하겠네. 오늘 슬레이프니르의 무도회는 신입생들과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무도회이네만, 보다시피 다들 다른 모습으로 가장을 한 탓에 익명성을 띄고 있지. 그것은, 가문이나 지위, 국적이나 작위 에 상관없이 이 학원의 내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사실을 강하게 인식시키기 위함이네. 그리하지 않으면 모두가 책상에 나란히 마주앉아 같이 공부를 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니 말일세. 상대가 누구인지 알고 싶다면 먼저 자신부터 정중하게 이름을 밝히도록 하게. 겉모습이나 신분에는 전혀 구애받지 않고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밝히도록 하게나. 그것이야말로 귀족을 귀족답게 만드는 예절의 첫걸음이니 말일세." 오스만의 말에 감명을 받은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들에게 오스만은 한 가지 놀라운 이야기를 꺼냈다. "아, 그리고... 제군들이 너무 놀랄까 싶어서 미리 말하지는 않았네만, 사실 이 자리에는 앙리에타 여왕 폐하께서도 참석하고 계신다네." 그 말에 회장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물론 이 무도회의 취지에 맞춰 확실하게 가장까지 하고 계시지. 누가 폐하인지 맞춰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 되지 않겠나?" 앙리에타가 와 있다는 사실에 학생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것이, 앙리에타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결코 자주 있는 기회가 아니었던 것이다. 일부 학생들은 만사를 다 제쳐두고 앙리에타부터 찾겠다고 벼르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었다. 한편, 루이즈 역시 그 이야기에 대해서는 상당히 놀라고 있었다. '고, 공주 전하께서 여기에? 그, 그렇다면 미리 귀띰이라도 해 주시지... 어, 가만... 설마...?' 앙리에타가 자신에게도 알리지 않고 학원의 무도회에 참가했다는 사실에, 루이즈는 이전에 느꼈던 불안감이 다시금 떠오르기 시작했다. 일전의 앙리에타는 마치 파우스트라는 개인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 듯 보였기 때문에... 그녀가 자신에게도 알리지 않고 학원에 온 것이 실은 파우스트와 몰래 만나기 위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던 것이다. '서, 설마... 내 생각이 너무 지나친 거겠지...? 아,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공주 전하께서도 나의 파우스트에 대한 마음을 알고 계셨던 것 같은데... 그걸 알면서도 그렇게까지 할 리는...' 그렇게 루이즈가 속으로 불안한 마음을 품고 있을 무렵에도 오스만의 연설은 계속 되었다. "자, 그럼 마무리로 오늘 무도회의 취지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하도록 하겠네. 제군들은 지금 자신이 원하는 이상적인 모습으로 변해있다네. 새 학년이 된 이후로는 그 이상적인 모습에 더욱 다가가도록, 그 이상에 지지 않도록 열심히 공부해주길 바라네. 모두들 훌륭한 귀족이 되어주길 바라네. 이상." 오스만의 연설에 감명받은 일동은 박수를 쳤다. 그 박수의 대상이 진실의 거울을 통해 아슬아슬한 젊은 여성의 복장으로 가장하여 나왔다가 학원 선생들에게 질질 끌려나가는 촌극이 벌어졌을 때에는 일순간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기도 했지만, 그 뒤로는 저마다 무도회를 즐기기 시작했다. 앙리에타가 와 있다는 말에 그녀를 찾기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것과는 상관없이 사교를 즐기는 학생들도 많이 있었으며, 뭔가 나름대로의 일정이 있는 모양인지 홀 밖으로 나가는 학생들도 있었다. 하지만, 불안한 마음에 속으로 애가 타기 시작한 루이즈는 도저히 무도회를 즐길 기분이 나지 않았다. '파우스트... 빨리 와 줘... 날 찾아달란 말이야...' 루이즈는 한참동안 파우스트가 찾아오기를 가만히 서서 기다리고 있었지만, 음식이 차려진 뒤 상당한 시간이 흘렀는데도 불구하고 파우스트의 모습이 눈에 띄질 않자, 결국 기다리다 못한 루이즈는 파우스트를 찾기 위해 홀 바깥으로 나갔다. '아, 정말이지... 그 녀석은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거야? 이, 이렇게... 주인님이 기다리고 있는데 전혀 찾아주지도 않다니... 온다고 했으면서 대체 어디로 가 버린 거냐구?' 속으로 파우스트에게 서운함을 품으면서 본탑에서 나와서 한참동안 학원 곳곳을 돌아다니던 루이즈는... "...에? 에에에?!" ...다시 본탑의 주변으로 돌아오자마자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다. 탑의 입구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있는 나무의 아래에서 파우스트와 앙리에타가 서로를 끌어안은 채 키스를 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만 것이다. 너무나도 충격적인 장면을 보고 만 루이즈는 입을 두 손으로 감싸면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나도 놀란 나머지 충격으로 굳어버린 루이즈는 지금의 머릿속이 혼란에 가득 찬 가운데에서도 생각을 정리하려고 했다. '어, 어떻게 된 일이야? 어, 어째서 저 두 사람이...?! 아, 아니야... 아니야! 오, 오늘은 슬레이프니르의 무도회잖아? 그러니까... 지금 저 둘은 분명히 가장한 다른 사람이겠지...? 그, 그래! 그럴거야! 시, 실제로 홀 내에서는 공주 전하로 가장했던 사람들이 몇이나 있었어...! 아, 하지만... 부, 분명히 공주 전하로 가장했던 사람은 있었지만... 홀 내에서는 파우스트로 가장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아무도... 없었는걸... 그, 그렇다는 건... 저기 있는 건 역시 파우스트 본인...?!' 루이즈는 필사적으로 지금의 상황을 부정하려고 했지만, 분명히 홀 내부에서 파우스트로 가장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결국 도저히 믿고 싶지 않았지만, 그가 파우스트라는 사실을 도저히 부정할 수가 없었다. 정황상 저기 있는 상대가 파우스트 이외의 다른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에, 루이즈는 이를 억지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일단 이 사실을 인정하게 되자, 그 뒤로 루이즈의 사고는 지극히 부정적인 방향으로 폭주하기 시작했다. '그, 그렇다면... 저, 저기에서 파우스트랑 키... 키스를 하고 있는 건... 대체 누구지...? 공주 전하로 가장한 다른 여학생일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학원 내에서 다른 누구랑... 아, 아니야... 학원 내에서라면 어떻게든 소문이 났을 테니까... 그, 그렇다면... 저, 정말로 공주 전하 본인...?! 그, 그래... 그런 거야... 그런 거라고...! 공주 전하께서 파우스트에게 관심이 있다는 건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설마 정말로 이렇게 행동하실 줄은 몰랐어... 일전에는 내 마음을 알고 계신다고까지 말씀하셨으면서...! 거기에, 파우스트까지...! 전혀 관심 없는 척 하면서... 이런 식으로 날 속이고 있었다니...! 두 사람이서... 이렇게 날 속이고 있었다니...!' 최근들어 그녀 자신의 불안한 마음 때문에 약간 흔들리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는 무척이나 신뢰하고 있었던 앙리에타와 파우스트에게 모두 배신당했다는 생각에, 루이즈는 이제 아무것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래... 공주 전하께서 파우스트에게 귀족 작위를 주려고 하셨던 일이나... 기사대의 대장으로 삼으려고 했던 일도... 전부 다 파우스트를 자신의 곁에 두기 위한 과정이었던 거야! 파우스트가 그걸 거절했던 것 역시... 자신이 공주 전하에게 마음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속이기 위함이었던 거고! 어,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그 두 가지 모두 다른 형태로나마 이루어졌으니까...! 이 두 사람의 관계는 대체 언제부터일까...? 아, 아니... 이제와서 그런 걸 생각하는게 무슨 소용이람? 이, 이미... 지금의 상황을 내 눈으로 똑똑히 보고야 말았는걸...!' 결국, 충격으로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배신감과 절망적인 기분에 잠겨있었던 루이즈는 두 손으로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는 눈을 가리고서는 학원의 정문 바깥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도저히 그런 장면을 본 뒤에도 거기에 있을 기분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자리만 아니라면, 다른 어디라도 상관없다는 기분이 들었다. 설령, 그녀 자신이 즉시 죽어버린다고 해도 말이다. ---------------------------------------------------------------------------- ...과연 이 글은 본격 NTR로 갈 것인가...?! ![]() 이번 주 무한도전은 복싱 특집의 뒷이야기였습니다. 경기를 앞두고 멤버들은 저마다의 역할 분담을 하기로 하게 되었는데, 쩌리짱, 항돈이 : 인천 국제 공항으로 마중 노찌롱, 길 : 무대 세팅 준비 날유, 하찮은 : 해설 준비 ...라는 식으로 역할이 나누어졌습니다. 날유와 하찮은은 과거의 권투 경기를 보면서 해설 연습을 하기 시작했는데... 하찮은이 '쟤', '강냉이', '한 방에 훅 간다.'라는 등등, 해설에 사용하기로는 상당히 난감한 표현을 사용해서 날유를 곤란하게 만들더군요. 개그를 노렸다면 또 몰라도 진지한 해설은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조금 걱정스러웠습니다. 쩌리짱과 항돈이는 인천 국제 공항으로 츠바사 선수를 마중나갔습니다. 조인식에 참가하기 위해서 밴을 타고 같이 이동했는데,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다가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자 결국은 눈물을 보이는 모습이 조금 안타까웠습니다. 이야기를 꺼냈던 쩌리짱과 항돈이도 당황하면서 격려했었죠. 노찌롱과 길은 수원 성균관 대학교 체육관의 무대 세팅을 위해서 조명이나 축하 공연 가수 등등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초청할 가수로 무한도전 동고동락 특집 이후로 무한도전 전용 가수(?)가 되어버린 케이윌이나 권투에 어울리는 가수(?) 원투 등등이 거론되는 가운데, 노찌롱이 라운드걸로 바다를 초청하는게 어떨까 하는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길은 기겁하면서 말리려고 들지만 노찌롱은 결국 전화를 걸었는데, 바다 曰. 나 거기 나갈거야! 내가 나가야 돼 그럼. 나 없이 안 돼. 나 없이 안 돼.
성균관 대학교에서 조인식이 끝난 뒤 경기 당일. 멤버들은 저마다 관객을 모으기 위해 홍보를 돌기 시작합니다. 공연이 있었던 길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이 먼저 공연을 하기로 했죠. 노찌롱과 쩌리짱, 항돈이가 수원 지역을 돌았고 날유와 하찮은이 서울 지역을 돌면서 홍보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어느 곳 할 거 없이 사람이 없어서 초반에는 상당히 고생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오후 1시 이후부터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모양이더군요. 나중에는 길도 수원으로 향하면서 자체적으로 홍보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홍보를 하는 도중에 한 학생이 하찮은을 보고 '진짜 못생겼다!'라고 말하는 바람에 발끈한 찮은옹이 '넌 더 못생겼다!'라고 응수하는 모습이 웃겼습니다. 그렇게 홍보를 한 보람이 있었는지, 체육관 내에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본 경기에 앞서 시범 경기가 시작되었는데, 아마추어 선수들의 프로 데뷔경기라는 모양입니다. 유명우 해설위원이 도움을 주기 위해 참석하셨는데, 그 분과 날유에게 지속적으로 멘트를 빼앗겼던 찮은옹은 결국 삐져서 물통을 던지면서 방해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첫 번째 시범 경기가 끝난 뒤에는 다시 찌롱이 무대의 분위기를 업시키면서 뒤이어 원투의 공연이 시작됩니다. 김미화씨도 관객으로 계시더군요. 그 뒤에도 두 번째 시범 경기가 열리고, 그 다음 공연은 케이윌이 담당했는데... 하필 발라드 풍의 노래를 부르는 바람에 무대의 분위기가 많이 냉각되었습니다. 분위기 반전을 위해 무릎까지 꿇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만... 다음 시범 경기가 끝난 뒤에는 브라운 아이드 걸즈가 공연을 시작함으로서 다시 분위기를 올렸고, 마지막 경기 전 공연은 바다가 활약함으로써 분위기를 달구는데에는 성공했습니다. 본 경기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최현미 선수의 부모님들과 츠바사 선수의 어머니,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 영정을 모신 상태에서 무대 아나운서를 맡은 쩌리장이 무대 위로 올라갔습니다. 양 선수의 소개를 위해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는데, 그 모습을 본 날유가 그의 목을 걱정할 정도였습니다. 확실히 츠바사 선수의 전적 소개를 하는 지점에서는 목소리가 살짝 어긋나기도 했었죠. 양 선수가 모두 무대 위로 올라온 뒤 공이 울리면서 1라운드가 시작되었습니다. 1라운드부터 두 선수는 치열하게 맞붙기 시작했는데, 경기 자체는 상당히 팽팽하게 진행되는 가운데 츠바사 선수의 스피드와 노가드 전법까지 사용하는 여유있는 모습이 제법 눈에 뛰더군요. 그러다가 2라운드에서 츠바사 선수가 노가드를 하다가 카운터를 맞고 다운되었습니다. 츠바사 선수로서는 생애 첫 다운이었기에 적지않은 충격이 예상되었습니다만, 그 뒤로는 다시 팽팽하게 경기가 진행되었습니다. 3라운드에는 츠바사 선수가 몇 차례나 슬립 다운이 되기는 했습니다만, 서로간에 위험한 순간들이 번갈아 오가면서 치열한 공방전이 계속 되더군요. 이후 라운드에서도 이런 패턴들이 반복되어 최현미 선수가 유리해지거나 츠바사 선수가 유리해지는 등등의 순간들이 오가면서도 2라운드의 다운과 같은 결정적인 장면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선수들 간의 치열한 경기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긴장감과 안타까운 감정을 느끼도록 하는 데에는 충분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양측 선수들의 어머니들이 긴장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으로 자신의 딸들을 응원하면서 기도를 하는 모습에서는 왠지 안쓰럽기까지 하더군요. 개인적으로는 경기 결과를 알고 있기에, 츠바사 선수의 어머니쪽이 더 안쓰럽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경기의 결과는... 인터넷을 찾아보시면 최현미 선수가 3:0 심판 전원 일치 판정승을 거두었다는 자세한 상황을 알 수 있었을테지만, 방송에서는 최현미 선수가 챔피언 벨트를 매고 있는 모습을 제외하면 직접적으로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아마 경기 결과보다는 경기에 힘쓴 선수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화와 마찬가지로 이번 화 역시 한일전이라는, 민족 감정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전개인데도 그런 방법을 선택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자막 역시 두 선수의 국적과는 무관하게 각자의 선수들이 열심히 노력을 하면서 경기를 준비했고, 최선을 다해 경기를 치루었으며, 순순히 경기 결과에 승복하는 등, 하나의 스포츠를 다루면서 거기에서 이뤄지는 감동적인 모습을 강조했던 것 같더군요. 다만,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이 있었습니다. 이번 방송의 취지가 궁극적으로는 한국에서의 입지가 좁은 복싱이라는 스포츠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왕이면 본 경기에 앞서 시범 경기를 치루었던 아마추어 선수들의 프로필 정도라도 잠깐 다루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물론 두 선수의 경기에 집중하는 편도 좋았겠지만, 이번 방송에서는 조연조차 되지 못했어도 선수들 개인에게 있어서는 프로 데뷔전이라는 중요한 경기였던 만큼 그들에 대해서도 조명하는 편이 더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복싱 특집이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다음 주는 무한도전 멤버들이 F-1에 도전하는 모양이더군요. 장비도 장비지만 제법 위험한 도전이기도 하다보니 어떻게 전개되었을지 기대가 됩니다. 그럼, 다음 주에 다시 쓰기로 하죠. * 제 84화 : 앙리에타의 마음.
알비온과의 전쟁으로 인해 부가된 군역과 평소 이상으로 무겁게 부과된 세금 때문에 트리스테인의 국민들에게는 여느 때보다 더 가혹했던 겨울이 물러가고 봄이 찾아왔다. 트리스테인의 수도 트리스타이나의 거리에 포근하고 활기찬 분위기가 감도는 것은 단순히 계절의 변화로 인해 기온이 상승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국민들이 힘든 겨울을 보내게 만든 원인이었던, 전시체제로 인한 군역과 추가적인 세금 부과가 끝났을 뿐만이 아니라, 여왕인 앙리에타가 대부분의 국민에게 전후 보상금(전사자의 유족들에게는 추가지급.)을 지급했던 것이다. 여기에 전쟁이 끝남으로써 외국에서 수입되는 상품의 유통이 재개되자 경제적으로 여력이 생긴 시민들은 전쟁으로 고생했었던 것에 대한 보상 심리로써 이러한 물건들을 사모으기 시작했고, 이런 활동을 통해 침체되었던 경기도 차차 회복되었다. 그렇게 통행인으로 북적이는 부르도네 거리의 어느 날, 새하얀 마차가 나타났다. 앞뒤로 검은 호위 마차를 세우고 위풍당당한 기사대의 행렬을 거느린 그 모습은 이 행렬이 고귀하고 지체 높은 인물의 행차임을 짐작케 했다. 트리스테인에서 이런 행차가 가능한 존재는 오직 단 한 사람 뿐이며, 그 본인이 타고 있는 하얀 마차의 마부석 옆에 붙은 백합의 문장이 이를 나타내고 있었다. 백합 문장이야말로 트리스테인의 왕가의 상징으로, 즉 이 마차에 여왕 앙리에타가 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녀는 지금 국경 도시에서 열린 게르마니아 황제와의 오찬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그녀가 탄 마차를 본 트리스타이나의 시민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여왕 폐하 만세! 트리스테인 만세!" 자신을 연호하는 국민들의 목소리에 화답하기 위해서, 앙리에타는 마차의 옆에 난 작은 창문을 열고는 군중을 향해 미소를 지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앙리에타는 비록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였지만, 어쨌든 전쟁을 마무리 지은데다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전후 보상금까지 지급했기 때문에 국민들로부터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었다. 특히, 국가 재건을 위해 왕실의 사재까지 팔아치움으로써 왕족으로서 당연하게 누렸을 호화로운 생활조차 포기했다는 사실이 국민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던 것이다. "청빈 여왕 앙리에타 만세!" "청빈 여왕 앙리에타 만세! 트리스테인 만세!" 이 청빈 여왕이라는 구호는 사재까지 처분한 앙리에타의 과감한 결단에 대해서 찬사를 보내는 국민들이 붙여준 일종의 애칭이라고 해도 좋았다. 앙리에타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와 호감이 잘 드러나는 별칭인 만큼 앙리에타로서는 기뻐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그녀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오히려, 청빈 여왕이라는 구호를 들을 때마다 그 표정이 어두워져갔다. 사실, 앙리에타는 자신이 재산을 처분했다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발표하고자 하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하지만 재무경으로부터 이 사실을 들은 마자리니는 정치적인 선전의 일환으로써 그 소문을 퍼트렸고, 그 결과가 이것인 것이다. 앙리에타는 창문의 커튼을 닫은 뒤 옆에 앉은 마자리니에게 시선을 돌렸다. "추기경. 저는 이러한 일을 가지고 인기를 얻을 생각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제가 개인 재산을 처분했던 건 어디까지나 저 개인의 양심에 따라 속죄를 하기 위함이었지, 결코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생각은 없었단 말입니다. 그렇기에... 지금의 이 상황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군요." 앙리에타의 말에는 마자리니가 자신의 바람과는 달리 그녀가 왕궁의 재산을 처분했다는 소문을 유포했다는 점에 대한 비난어린 가시가 돋쳐있었다. 그렇게 말하는 앙리에타의 입술이 살짝 떨리는 것은 실제로 그녀가 약간이지만 분노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마자리니는 구태의연한 태도로 말했다. "폐하께서 원하시든 원하지 않으시든, 폐하께서 하는 모든 행동은 정치적인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면, 차라리 이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용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입니다. 게다가, 이 소문을 통해서 손해를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습니까? 오히려 전쟁을 치룬 이후 혼란에 빠질 우려가 있는 국민들에게 다시 한 번 국가에 대한 신뢰와 충성심을 가지게 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언젠가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이용할 수 있는 건 무엇이든지 이용하는 것이 정치의 기본'이라는 말씀이셨죠.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역시 마음에 들지는 않는군요. 나 자신의 양심에 대한 행동조차도 치세의 도구가 되어야만 한다니..." "정치란 원래 그런 것입니다." 덤덤하게 말하는 마자리니의 말이 틀리지는 않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감정적으로는 이를 용납하고 싶지 않았다. 앙리에타가 이렇게 이전보다도 다소 감정적인 경향이 심해진 것은 전쟁이 끝난 이후로 연일 쏟아졌던 다량의 업무에 지친 탓이기도 했다. 전쟁이 끝나고 각국과의 교류가 더욱 활발해진 이후로 국가간 정상 회담이 늘어난 것은 물론이고 국내에도 처리해야 할 업무들이 여기저기 산적해있었기 때문에, 최근 앙리에타의 일정은 여느 때보다도 바쁘고 정신이 없었다. 이렇게 반복적인 바쁜 일상과 중압감은 앙리에타의 마음에 부담을 주고 있었다. 생각같아서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한숨을 돌리고 싶었지만, 여왕으로서의 입장은 그녀에게 그럴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전쟁 중이었다면 이 정도로 힘겹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때는 복수를 해야만 한다는 일념으로 다른 생각은 하지도 않고 그것을 위해서 매진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위태롭게 앙리에타를 지탱해주던 전쟁은 이미 끝났다. 복수의 대상이었던 크롬웰은 죽어버렸고, 남은 것은 공허한 허무감과 자신의 복수심으로 인해 희생된 국민들에 대한 죄책감과 그들에게 보상해줘야만 한다는 의무감, 전쟁이야말로 자신이 저지른 가장 큰 실책이자 앞으로는 반드시 피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 그리고 산더미같이 쌓인 전후 뒷처리 문제였다. 전후 얼마동안은 자신의 감정에 따라 일으킨 전쟁으로 인한 업을 지고 가겠다는 심정으로 노력했으나, 그것도 이제 슬슬 한계에 달하고 있었다. 이제 앙리에타는 지칠대로 지쳐버렸던 것이다. 그러던 차에, 밖에서 시민들이 '누군가'에 대해서 수군거리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최근 앙리에타가 새롭게 관심을 가지게 된 '어떤 인물'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환호성이라기보다는 의혹과 불신감에 가까운 목소리였기에 그녀는 쓴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대중의 입장에서 '그'는 나쁜 쪽으로 오해를 당하기 딱 좋은 입장에 있었고, 그런 상황에서 도저히 순순히 받아들이기 어려울 정도로 커다란 공적을 갑작스럽게 세웠다는 이야기가 알려졌으니 시민들이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은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를 일이기는 했다. 하지만, 앙리에타의 입장에서는 다소 달랐다. 그는 이전에도 몇 차례나 자신의 가장 소중한 소꿉친구의 목숨을 구해주기도 했고, 그 자신 역시 적의 음모로부터 구제되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번 전쟁에서 그는 연합군의 전멸이라는, 상정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 실제로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목숨을 걸고 단신으로 활약함으로써 연합군의 퇴각 시간을 벌었을 뿐만이 아니라, 단 한 명의 적의 목숨조차도 해치지 않았다는, 그야말로 기적같은 업적을 이루었다. 그가 없었더라면 그녀의 소꿉친구와 함께 연합군은 전멸했을 것이며, 자국의 안위까지도 위태로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을 가능성이 컸다. 정말로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앙리에타는 결코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번 전쟁 자체가 자신이 복수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일으킨 것이었던 만큼, 그것이 실패했을 뿐만이 아니라 그로 인해 자신의 소꿉친구와 수 많은 국민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국가의 존망마저 뒤흔들게 만들었다면, 그로 인한 충격과 자괴감이 어느 정도였을 것인지는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그런 최악의 상황을 전설속에서나 소설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믿을 수 없는 활약을 통해 막아냄으로써 자신의 실책을 완벽하게 커버해준 그는... 앙리에타에게 있어서 동경의 대상이라고 해도 좋았다. 글자 그대로의 의미로, 영웅이었던 것이다. . . . 한편, 이번 앙리에타의 경호에는 신설된 수정령 기사대 역시 참가하고 있었다. 뭐, 경호라고는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트리스테인 마법 학원의 학생들의 모임일 뿐인 이들이 경호 임무에 큰 도움이 될 리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소집되어 경호에 투입이 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실질적인 경호 임무를 맡긴다기 보다는 다분히 의례적인 것으로, 요컨데 신설된 기사단을 국민들에게 보여주자는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 취지하에, 이들은 오찬회에서 돌아오는 앙리에타의 행렬과 트리스타이나의 입구에서 합류하여 지금에 이른 것이다. 왕궁의 서열에 따라 그 대열은 행렬의 최후미이긴 했지만, 이들의 사기는 왕성했다. 다만... "...근데 왜 나까지 여기에 있어야 하지?" 이들 수정령 기사대의 선두에 서서 말을 탄 채 그들을 이끌고 있는 기쉬의 바로 옆에서 역시 말 위에 올라탄 파우스트가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 "일전에도 말했지만, 난 그저 조언자 정도에서 그칠 뿐 이 기사단이라는 이름의 전쟁놀이와 어울려줄 생각은 추호도 없어. 근데, 왜 내가 너희들의 선전이라는 정치적 쇼에 곁다리로 붙어서 이런 곳까지 와서는 여왕의 행렬 꽁무니를 쫄래쫄래 따라다녀야만 하냐고? 아, 진짜... 짜증스럽네." 심히 짜증스럽다는 반응을 보이는 파우스트에게 기쉬는 약간 주눅이 든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건 어쩔 수 없잖아? 어차피 넌 이번 전쟁에서 공을 세운 사람으로써 참가하는 거니까 말이야." 실제로 파우스트가 이번 행렬에 참가하게 된 명분은 수정령 기사대와는 별개의 이유 때문이었다. 구국의 영웅으로써 이번 퍼레이드에 참가해달라고 앙리에타에게 요청받았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될 것이 뻔한 행렬에는 참가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파우스트의 심정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가하기로 결정했던 건 다른 속마음이 따로 있었다. 과연 트리스테인의 국민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가 궁금해졌던 것이다. 일단 여왕인 앙리에타로부터 정식으로 인정을 받기는 했다고 하지만, 파우스트는 이왕이면 그녀 뿐만이 아니라 트리스테인의 일반적인 다른 사람들로부터도 인정받기를 바라고 있었다. 생츄어리에서는 갖은 고생을 다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비극으로 끝나버렸기에,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곳에서 만큼은 그런 기분을 느끼지 않기를 희망했던 것이다. 그게 파우스트의 솔직한 본심이었지만... "그야 그렇긴 하지만... 솔직히 짜증난다고. 이런 식으로 다른 놈들의 눈요깃거리나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불쾌하단 말이지." ...정작 행동은 그의 생각과 반대로 행해지고 있었다. 파우스트는 시내로 들어선 이후로는 계속해서 기분이 나쁘다는 듯 얼굴에 힘을 주면서 인상을 쓰고 있었고, 입에서도 투덜거리는 듯한 불평을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마치 학원에 돌아온 이후로 얼마간 그랬던 것과 같이 일부로 안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라도 할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사실 파우스트는 그럴 생각으로 저런 태도를 보여줬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가 저런 식으로 별로 마음에도 없는 행동을 하고 있었던 이유는... 긴장했기 때문이었다.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알비온에서 당했던 조리돌림의 후유증이 아직 남아있었던 파우스트는 많은 사람들의 시선에 자신이 평정심을 발휘하여 여유로운 모습을 보일 수 있을지가 불안했던 것이다. 얼굴에 인상을 쓰고 있었던 것은 얼굴에 힘을 줘서 피를 몰리게 하지 않으면 가뜩이나 창백한 안색이 더 새하얗게 되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고, 계속해서 입으로 불평을 늘어놓는 것 역시 아무런 말도 없이 가만히 있기가 불안했기 때문에 자신을 다독이기 위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그나마 파우스트의 긴장감을 줄여주는 점이 하나 있었다면, 자신이 행렬을 이루는 수 많은 사람 중 하나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자신이 특별하게 선두에 앞장선 것도 아니었으므로 딱히 시선이 심하게 집중될 우려는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다만, 파우스트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뒤늦게 인식했다. '...그나마 시선의 집중이 덜한 건 다행이긴 해. 그런데... 가만있자, 이럴거면 난 대체 여기에 왜 온거지? 다른 시민들이 나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궁금해서 왔는데, 정작 내게 시선이 집중되지도 않는다면 그걸 확인하는게 불가능하잖아? 후우, 나도 참... 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궁금하다면서 정작 시선이 집중되는 건 피하고 싶어한다니...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잖아? 제길, 나란 놈은 정말로... 한심한 겁쟁이로군. 좀 더 당당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자신이 이 상황에서 바라고 있는 욕구가 서로 완벽하게 상충하고 있었다는 부분을 말이다. 조리돌림으로 인한 트라우마 때문에 대중의 시선을 받는 건 원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되면 그들의 자신에 대한 생각을 들을 수 없게된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생각을 알기 위해서 관심을 끌려고 눈에 띄는 행동을 한다는 것은 그들의 관심을 구걸하는 것 같아서 약간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거니와 기분나쁜 트라우마가 떠오를 것만 같아 불안했다. 그리고... 설령 자신이 좋은 의미에서 주목받는다 하더라도 과도한 호의에 의한 부담감으로 인해 손발이 오그라들 것만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자신이 어정쩡한 처지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자각한 파우스트는 자조적인 기분에 빠진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그저 얕잡아 보이지나 않겠다는 생각으로 계속 겉으로 투덜거리기만 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자신의 목숨을 거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 인간인 파우스트는, 그의 복잡한 과거 사정으로 인해 이렇게 대중 앞에서는 한없이 무력한 존재에 불과했다. 그렇게 파우스트가 내심 여기에 오기로 한 자신의 선택에 후회하면서도 안절부절하지 못한 나머지 자신의 허세력을 증강시키기 위해서 그다지 침착하지 못한 반응을 보이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기쉬는 별로 긴장하는 기색이 느껴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하긴, 넌 시끌벅적한 건 별로 좋아하지 않더라. 솔직히 나도 조금 긴장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달리 생각하면 이건 기회잖아? 대중 앞에서 당당한 나의 모습을 과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란 말이지! 이왕이면 더욱 더 시선을 끌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아, 그렇지!" 뭔가 생각이 난 모양인지 기쉬는 자신이 마법 지팡이로 사용하는 장미 조화를 꺼내어 휘둘렀다. 그러자 장미꽃잎이 하늘거리며 공중에 흩날리더니... 이윽고 비둘기로 변화하여 하늘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관중들은 환호성을 지르면서 기쉬에게 관심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어, 저 분은..." "그라몽 가문의 사남이신 기쉬 님이야!" "맞아! 그러고 보니 지난 전쟁에서 도시 하나를 점령하는데 큰 공을 세웠기 때문에 이번에 새로운 기사대의 대장에 취임하셨다고 했어!" 여기저기서 기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더니 이윽고 그에 대한 환호성이 나오기 시작했다. 기쉬는 그 환호성에 손을 흔들어 답했다. 실은 이를 위해 기쉬가 미리 돈을 뿌려둔 결과이긴 했지만, 그래도 간간히 산발적으로 기쉬의 이름을 연호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사전작업과는 별개로 그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기는 한 모양이었다. "흥, 별로 능력도 없는 주제에 자기 과시욕만 강하긴. 하여간, 관심받는데에 혈안이 되었군." 파우스트는 괜시리 빈정거리는 투로 중얼거렸지만, 속으로는 약간 생각이 달랐다. 분명 기쉬가 이렇게 태연하게 행동할 수 있는 것에는 평소의 주목받고 싶어하는 성격 때문일 것이고, 파우스트는 관심을 받기 위해서 일부로 튀는 행동을 하는 건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서 주눅들지 않고 자기 과시까지 할 수 있는 기쉬의 태도는 솔직히 조금 부러웠다. 자신에게는 목숨을 거는 것보다 더 주저되는 일을 태연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물론 저건 기쉬 녀석이 용기가 있다... 라기보다는 저런 걸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 거겠지. 그에 비하면 난... 후우, 물론 저 녀석과 난 처한 상황이 다르니까 그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건 알아. 그렇다고는 해도... 저런 녀석에게 내가 부러워할 점이 있다는 건... 묘하게 기분나쁜데.' 그렇게 파우스트가 속으로 중얼거릴 때, 그의 귀에 다른 목소리가 들어왔다. "그런데... 기쉬 님 옆에 있는 저 남자는 누구지?" "그러게. 망토를 입지 않은 걸 보니 평민인 모양인데..." "왜 한낱 평민이 말을 타고 기사대와 같이 있는거지?" 아무래도 기쉬에게 시선을 주던 사람들이 그의 곁에 있는 파우스트에게까지 관심을 가지게 된 모양이었다. 물론 그 관심은 의혹과 수상함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지만 말이다. 애당초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는 사람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런 상황을 알아차린 파우스트는 이중적인 생각이 들었다. '뭐야... 애당초 날 알아보는 사람도 없잖아? 하, 하긴... 귀국하고 나서 공개석상에서 모습을 드러낸 적도 없건만, 그걸 무슨 수로 알겠어? 그렇게 생각하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긴 한데... 왠지 나 혼자서 설레발이 요란스러웠던 것 같아서 조금 쪽팔리는군... 뭐, 약간은 서운한 감이 없지는 않긴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된 이상 필요 이상의 시선이 집중될 일도 없겠지. 그냥 이대로 조용히 넘어가도록 하자고...' 내심 아쉬우면서도 난처한 입장이 되지는 않았다는 생각에 어느 정도는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러나... 그런 파우스트의 생각은 군중들 틈에서 들려온,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한 굵직하고 걸쭉한 여자 말투의 목소리로 인해 박살났다. "다들 무슨 소리들을 하는 거야? 저 아이가 바로 네크로맨시를 사용한다는 파우스트잖아! 홀로 알비온의 7만 대군을 막아준 덕분에 연합군은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고, 나 역시 무사히 귀환할 수 있었기에 다들 내 주점에서 술을 마실 수 있게 된 거란 말이야!" 그 목소리의 소유자는 스카롱이었다. 놀란 파우스트가 고개를 돌리자, 주점의 소녀들에게 둘러싸인 스카롱이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 스카롱의 모습을 확인한 파우스트는 자기도 모르게 약간이지만 당황한 목소리를 냈다. 어째서 스카롱이 그 사실을 확신하듯이 말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 자신이 직접 공개 석상에 나선적은 없었지만, 앙리에타는 그의 이름과 이번 전쟁에서 세운 업적에 대한 다소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대중에게도 알리기는 했었다. 그리고, 지난 전쟁에서 파우스트는 로사이스로 몰려오는 알비온의 7만 대군을 상대하러 나가기 전, 스카롱의 도움을 받아 윔펜으로 분장을 했던 적이 있었다. 분장을 할 때 그 목적에 대해서 대략적으로나마 설명했기 때문에, 스카롱은 일반 국민 중에서 파우스트가 홀로 7만 대군을 막았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뭐, 어째서 스카롱이 자신의 변모한 모습을 보고도 혼동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파우스트도 약간 의아하게 여기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우스트가 당황하는 소리를 냈던 건... 지금껏 그가 '그 파우스트'라는 사실을 몰랐던 시민들이 스카롱의 발언을 통해 그 사실을 알게 됨으로써, 갑자기 자신을 향해 시선이 집중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때문에, 그냥 조용히 넘어갈 생각이었던 파우스트는 이 상황에 대해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가 걱정했던대로 그에 대해서 시민들이 저마다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뭐? 저 소년이 파우스트라고?" "정말로 저런 녀석이 홀로 7만 대군을 막았다고? 설마 그럴리가!" "도저히 믿을수가 없군 그래. 그냥 얼굴 좀 반반하게 생긴 새파란 애송이잖아?" "도저히 그런 전과를 올릴 수 있는 녀석으로는 보이지 않는군!" "그보다 네크로맨시를 사용한다고? 그렇다는 건, 그 더러운 엘프 놈들과 한통속이라는 거 아냐?" "뭐, 지금 행렬에 따르고 있는 걸 보니 일단은 귀화한 모양이겠지. 힘을 얻기 위해서 인간을 배신한 뒤에는 또 다시 엘프를 배신한 모양이지만 말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수상해! 실은 첩자 노릇을 하고 있는 걸지도 몰라!" "맞아! 무엇보다 저 녀석의 눈을 보라고! 월목(月目)이잖아? 그 자체로도 충분히 불길해!" 대부분의 시민들이 파우스트에 대해서 하는 말은 그가 그렇게나 엄청난 공적을 세웠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것과, 그들의 생각이 기존에 알려진 네크로맨시에 대한 통설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을 뿐이라는 점, 그리고 선천적인 것도 아닌 파우스트의 오드아이에 대해서 하르케기니아 특유의 부정적 미신에 근거한 반응을 보이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렇게 시민들이 파우스트에 대해서 천편일률적으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기쉬를 비롯한 다른 수정령 기사대 단원들도 걱정스러운듯한 시선으로 파우스트를 바라보았다. 파우스트는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듯, 겉으로는 조금 전부터 짓고 있었던 기분 나쁜듯한 표정을 고수했지만... 속으로는 상당히 낙담했다. '후우... 내가 죽을 고비까지 넘기면서 간신히 그런 공적을 세웠건만, 역시 일반 시민들의 생각을 바꾸는 건 결코 녹록치 않은걸까...? 오히려 짜증나는 귀족 놈들이 나를 더 인정해주는 느낌이라니... 뭐, 물론 귀족 놈들은 내가 그런 공적을 세웠다는 사실만 받아들일 뿐 나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쾌하다거나 경계하는 듯한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그래도 시민들은 내가 공적을 세웠다는 사실조차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으니까... 사실 생각해 보면 그렇게 이상한 일만은 아니야. 정보의 접근성에 있어서 귀족과 평민은 하늘과 땅 차이니까 말이지. 귀족 놈들은 아니꼬와도 내 활약을 인정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자세한 사정을 알 수 있지만, 평민들은 위에서 전해주는 것 이외에는 독자적으로 신뢰할 만한 구석이 있는 증거를 확보할 수도 없어.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평민놈들은 그럴 필요 자체를 느끼지 못할지도 모르지... 뭐, 어쨌든... 이게 나에 대한 대중의 생각이란 말이지...? 빌어먹을... 왠지 섭섭한데다 짜증나고 억울하기까지 한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뭐, 어쩌겠어? 암만 이렇다고는 해도 생츄어리에 비하면... 오른팔까지 잃어가면서 기껏 힘들게 악마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대가가 단 하루 조차도 마음편히 지내지 못하고 목숨을 노리는 추격자들에게 사냥당할 것 만을 걱정해야 했던 것이 전부였던 나의 저주스러운 고향, 생츄어리에 비하면... 내게 있어서 여긴 그야말로... ...낙원이야, 낙원이라고...빌어먹을!' 자신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으로 인해 파우스트는 속으로 상처를 입긴 했지만, 그래도 자신에게 있어서는 이러한 상황이 차라리 낙원으로 여겨질 정도로 최악의 악몽과 같았던 자신의 고향, 생츄어리와 비교하면서 속으로 자신을 달래고 있었다. 그런다고 해서 기분이 아주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일은 결코 없었지만 말이다. . . . 행렬이 왕궁에 도달하자, 호위 기사단은 당직을 맡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전부 해산했다. 이번에 새로 신설된 수정령 기사대는 1년 동안의 훈련기간을 마친 뒤에야 정식으로 왕궁 근무에 배정될 예정이었으므로 지금 그들이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은 없었다. 첫 번째 임무를 마쳤으니, 남은 일은 학원으로 돌아가는 일 뿐이었다. 수정령 기사대의 다른 대원들은 전부 다 학원으로 되돌아갔지만, 아직 파우스트는 아직 왕궁 내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는 수정령 기사대의 정식 대원도 아니었던 데다가, 그는 루이즈의 사역마였다. 지금 루이즈는 앙리에타를 알현하기 위해 왕궁에서 호위를 받는 중이었으며, 파우스트는 그런 루이즈의 용건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파우스트가 행렬에 참석하느라 루이즈와 떨어질 수 있었던 일도 그렇게 루이즈가 별도로 호위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파우스트는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앙리에타는 아까 전의 행렬에서 그가 시민들로부터 비난이라고 해도 좋을 악담을 들었다는 사실을 상당히 신경쓰고 있었다. 비록 그 당시에는 같은 마차에 동석하고 있었던 마자리니의 눈도 있었고 그녀 스스로도 여왕으로서의 체통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가만히 있었지만, 자신의 둘도 없는 영웅인 파우스트가 대중으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는 사실을 참아 넘기기는 힘들었다. 생각 같아서는 마차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시민들에게 파우스트가 그런 사람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역설한다거나, 그에게 위로의 말이라도 건내고 싶었지만, 상기의 이유로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앙리에타는 지금이라도 파우스트에게 다가가 아까의 일에 대해서 사과와 함께 위로라도 하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지만, 다른 사람의 이목이 있는 궁궐 내에서 파우스트에게 다가가 그런 행동을 할 수는 없었다. 여왕의 몸으로 다른 누군가에게 개인적인 용건으로 다가가서는 다정다감하게 행동하는 모습을 보이기라도 했다가는 굉장히 난감한 '오해'를 사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녀 자신은 자신이 파우스트라는 사람에 대해서 가지게 된 감정이 단순한 남녀 사이의 감정과는 다른, 순수한 동경에 가까운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다른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설령 앙리에타가 그런 감정을 품고 있었다고는 해도, 그녀의 소꿉친구인 루이즈가 파우스트에게 여성으로서의 애틋한 감정을 품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절대로 거기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그거야말로 루이즈를 배신하는 행위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앙리에타는 파우스트는 내버려둔 상태로 자신의 처소에서 기다리고 있는 루이즈를 만나러 갔다. 그녀의 얼굴을 보자 최근에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진심어린 미소가 얼굴에서 피어났다. "아아, 루이즈! 루이즈! 가끔씩은 얼굴이라도 좀 비춰줘요!" 앙리에타는 얌전히 처소에서 서있던 루이즈를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저 역시 그리 하고픈 마음은 간절합니다만, 공주님께서 많이 바쁘신 듯 해서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괜찮습니다. 당신에게는 이 방에 언제든지 출입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으니까요." 앙리에타는 여전히 미소를 띈 얼굴이었지만 루이즈는 방 안을 둘러보면서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것이, 지금 앙리에타의 개인 처소의 상황은 일국의 여왕의 방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살풍경하기 짝이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원래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각종 가구들은 온데간데 없이 침대 하나만 딸랑 남겨져있는 상태였다. 사실 이 침대가 남은 것도 재무경이 '아무리 그래도 여왕 폐하를 바닥에서 주무시게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것 만큼은 저도 양보할 수 없군요.'라면서 만류했기 때문이었다. "그보다, 정말로 다 팔아버리셨군요." "네, 그래요. 어차피 여왕의 일을 수행하는 데에는 책상과 잠을 잘 곳만 있다면 충분하답니다. 하지만, 이렇게 반가운 손님에게 제가 사용하는 의자외의 다른 의자를 제공하지도 못했다고 생각하니 왠지 미안해지는군요. 부족하지만 여기에라도 앉아요." 앙리에타는 자신의 침대에 걸터앉은 후 루이즈에게 손을 내밀며 자신의 곁에 앉도록 했다. 바로 그 때, 루이즈는 언제나 앙리에타의 손가락에서 빛나고 있던 '바람의 루비'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공주님, 늘 손가락에 끼고 계시던 바람의 루비는 어떻게 하셨나요?" "아아, 그것 말인가요? 그것도 가재도구와 함께 팔아버렸답니다." "네, 네에?!" "그건... 웨일즈 님의 유품이니까요. 그걸 보고 있으려면... 생각하고 싶지 않아도 자꾸만 생각이 떠오른답니다. 다시는 현실이 되지 않을 그 분과의 과거의 추억들과 그 분을 잃어버렸다는 상실감과 슬픔, 그리고... 지금은 방향을 잃어버렸지만 여전히 완전 연소하지 못한 복수심의 잔재가 말이죠. 그 루비의 탓으로 하려는 건 아닙니다만, 그러한 감정들이 저로 하여금 지난 전쟁을 일으키도록 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전쟁이 끝난 이 시점에서 제 손으로 직접 놓아버리는 편이 마땅하다고 여겼지요." "어, 어찌 그런 일을...!" 루이즈는 앙리에타가 바람의 루비를 처분하고자 했던 그 심정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시조의 루비가 처분해서는 안 될 무척이나 중요한 물건이라는 점 때문에 루이즈는 당혹스러운 목소리를 내지 않을 수 없었다. 경악하는듯한 루이즈의 반응에 앙리에타는 어떻게 된 일인지에 대해서 물었다. "루이즈, 왜 그렇게나 놀라는 건가요?" "그 루비는... 허무의 사용자에게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물건입니다. 허무의 힘을 계승한 사용자라고 해도 허무의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비보와 함께 루비가 갖춰져 있어야만 사용이 가능합니다! 그렇기에 지난 번 저를 습격했던 묘드니트니른이라는 허무의 사역마도 제가 가지고 있던 물의 루비와 시조의 기도서를 빼앗으려고 했었던 것이죠! 그들이 비보를 악착같이 모으려고 하는 이유가 결코 평화적인 목적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는 걸 감안하면... 이건 보통 일이 아닌 겁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앙리에타는 당황한 나머지 허둥대기 시작했다. "아아, 이를 어쩌나! 내가 대체 무슨 짓을...!" "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어서 그 루비의 행방을 찾아야만 합니다! 공주님, 그 반지를 누구에게 건내셨나요?" "재, 재무경 데므리에게 건냈습니다. 어서 빨리 그를 불러야겠군요!" 다급해진 앙리에타는 서둘러 재무경을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여왕 폐하." 앙리에타가 다급해하는 기색이 역력했기 때문에 재무경 역시 다소 불안한 목소리를 냈다. "재무경, 제가 일전에 당신에게 맡겼던 반지 말입니다만..." 앙리에타가 그 반지를 찾고 있다는 사실에 재무경은 안도의 빛을 띄운 미소를 지었다. "아, 그거 말씀이십니까? 알비온 왕가의 유물인 바람의 루비 말씀이시죠?" "네, 그렇습니다! 제가 일전에 재무경에게 팔아달라 명하면서 건내줬던 바람의 루비에요! 혹시 누구에게 그 반지를 팔았는지 기억하고 계십니까?" "폐하, 그렇게 너무 당황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재무경은 품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어 뚜껑을 열었고, 그러자 그 안에 있던 바람의 루비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 "이걸 제게 건내시던 폐하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에 혹시나 해서 이렇게 따로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분명 언젠가 이렇게 다시 찾으시려고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었죠." 사려깊은 재무경의 행동에 앙리에타는정말로 안도한 듯 미소를 지으면서 두 손으로 바람의 루비를 받아들었다. "아아... 당신은 정말로 대단하신 분입니다!" "원래 마음이 담긴 소중한 물건은 어떤 일이 있다고 해도 결코 놓아버려서는 안되는 법입니다. 그것은 신체의 일부나 마찬가지니까요." 재무경이 돌아간 뒤, 앙리에타는 다시 자신의 손 안에 놓인 바람의 루비를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나도 참... 어리석었네요. 아무리 슬픈 기억이 담긴 반지라 해도... 거기에 관한 기억은 결코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라 제가 죽을 때까지 짊어지고 가면서 견뎌야 할 것이었는데 말이죠. 이걸 버린다고 해서 그러한 일들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건만... 오히려, 이 반지는 저의 몇 안되는 기쁨이었던 저의 소중한 추억이 깃들어있는 소중한 물건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줄도 모르고 전 철없이 과거를 청산하겠다면서 이 반지를 버리려고 했다가... 이렇게 다시 반지를 되찾고 눈물이 흐르는 이 시점이 되어서야 비로소 안심했다는 걸 깨닫다니..." 루이즈는 차분한 얼굴로 앙리에타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았다. "공주님께서는 조금 많이 피곤하셨던 거에요. 틀림없이 자신의 소중한 것에 대해서 생각을 해볼 겨를도 없이... 며칠이라도, 단 하루라도 좋으니 휴식을 취하시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말씀은 고맙습니다. 저도 생각같아서는 그러고 싶네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할 수가 없답니다. 제가 하루하도 쉬면 그 만큼 나라의 어딘가가 멈춰버리게 되거든요." 앙리에타는 루이즈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면서 중얼거렸다. "솔직히 전... 당신이 부럽답니다." "무, 무슨 말씀이신가요...? 공주님께서는 제가 지니지 못한 것들을 모두 지니시고 계시잖아요." "글쎄요... 그야 그럴지도 모를 일이죠. 하지만, 떄로는 지니지 않는 편이 지니는 것 보다도 더 나을 때가 있답니다. 최근 들어서 전 점점 그렇게 느끼고 있어요. 그리고... '루이즈만이 지니고 있는 것' 중에서도..." 뭐라고 말을 하려던 앙리에타는 흠칫 놀란 듯 입을 가리더니,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그런 앙리에타의 반응에 루이즈는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고, 공주님...?"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보다, 저를 찾아오신 당신의 용건을 아직도 듣지 못했군요." "아, 네..." 조금 전 앙리에타의 반응이 약간 신경쓰이기는 했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한 루이즈는 자신의 용건을 밝혔다. "그게... 파우스트에 대한 일입니다." 그 말에 앙리에타는 약간 동요했다가,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은 제가 빌리고 말았네요. 아까 시민들이 그에 대해서 나쁜 오해가 어린 발언들을 하는 걸 들었기 때문에, 그가 거기에 대해서 신경쓰고는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조금은 죄스럽습니다. 돌아가면 그에게 뭐라고 이야기라도 해 주세요. 아니, 아니면 제가 추가적인 보상을 하는 편이..." "그 보상에 대해서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네?" "파우스트를 귀국시키기 위해서 알비온 대륙으로 뷔센탈 호까지 보내주시고, 비록 거절당하기는 했다고 해도 그에게 기사대 대장의 작위와 함께 슈발리에의 칭호를 내려주시려고 하셨고, 일반적인 하급 귀족의 6배에 해당하는 연금을 지급받을 수 있도록 해 주시고, 전속 하인을 부릴 수 있도록 몸소 명령까지 내리셨습니다. 일개 평민일 뿐인 그에 대해서 그렇게나 과분한 후의를 내리시는 게 아닌가... 라고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저 역시, 파우스트는 그럴 만한... 아니, 설령 그 이상의 대우를 받는다 하더라도 부족함이 없는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하오나..." "...?" "...그가 거절하려고 했던 신규 기사대의 대장의 작위를 내리시지는 않았지만, 기어코 파우스트를 그 기사대와 관계가 있도록 하시기 위해서 드 그라몽의 사남에게 별도로 편지를 보내셨다는 이야기에 대해서 만큼은... 솔직히 의아한 생각이 듭니다. 이는 마치... 폐하께서 뭔가 다른 생각이 있으신게 아닌가... 하고 억측하게 될 정도로 말이죠." "...예를 들면?" "그, 그게... 그러니까... 혹시나 파우스트를 어떤 위험한 임무에 투입하려고 하신다거나..." 그 말에 앙리에타는 어안이 벙벙해진 얼굴로 루이즈를 바라보았다. "내, 내가요? 그를 위험한 임무에...? 루이즈도 참... 그럴 리가 없잖아요? 아, 아니... 설령 당신이 저를 그렇게 생각하신다고 해도 전 입이 열 개라 하더라도 할 말이 없겠죠. 분명히 전 지난 전쟁에서 복수심으로 인해 당신과 그를 위험에 처하도록 만들었으니까요... 하지만, 전 이제 다시는 그런 일을 겪고 싶지 않아요. 당신은 저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친구인데다가... 그 역시 제게 있어서는 영웅이나 마찬가지이니까요. 전 이제 다시는 전쟁과 같은 위험한 일을 생각하지 않으리라 결심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나 자신의 의지로 두 사람에게 위험한 일이 될 것을 명령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 시조 브리미르께 맹세하겠습니다." "그, 그렇다면... 괜찮습니다만..." 약간 정색하면서 자신의 의혹을 부정하는 앙리에타에게 루이즈는 속으로는 안도했지만, 동시에 한 가지 불안한 생각이 떠올랐다. '공주님께서 그럴 생각이 없으시다면 정말로 다행이지만... 그, 그런 게 목적이 아니었다면... 결국 공주님께서 파우스트에게 내리시는 후사는... 결국 파우스트 개인에 대한 호의에서 비롯되었다는 걸까...? 서, 설마... 내가 지나치게 걱정하는 거겠지...? 나, 나도 참...' 루이즈는 그런 생각을 한 자기 자신에게 어처구니가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런 의혹을 불식하려고 했지만, 어쩐지 마음 한쪽 구석이 불안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지만, 이제 앙리에타로부터 파우스트가 위험에 빠질 일은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으므로 루이즈도 거기에 대해서 이의는 없었다. "그럼, 공주님.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네, 그럼 조심해서 돌아가도록 하세요. 밖에서 그 분이 기다리고 계시답니다." 공손히 고개를 숙인 루이즈가 방 밖으로 나간 뒤, 앙리에타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고 자책하듯 입을 열었다. "난, 대체 아까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걸까...? '루이즈만이 지니고 있는 것'이라니... 루이즈가 '그'와 함께 지낼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부럽다는 이야기를 꺼내려고 했던 것일까...? 나의 그에 대한 감정은 그런 게 아니라... 좀 더 순수한 동경에 가까운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앙리에타는 아직도 손에 쥐고있던 바람의 루비를 자신의 손가락에 끼운 뒤, 그것을 바라보면서 작게 중얼거렸다. "자신을 잊고, 다른 사람을 사랑해달라고, 당신은 그렇게 말씀하셨죠. 그리고... 전 두 번 다시는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리가 없다고, 그렇게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앙리에타는 한숨이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전 아직 이것이 사랑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어요. 그렇지만, 가급적이면 그렇지 않기를 바라고 있답니다. 그 분은 저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친구인... 루이즈가 마음에 두고 있는 상대니까요. 지난 번 전쟁에서도, 전 저 자신의 감정에 휩싸여 그녀에 대해서 사려깊게 생각하지 못했고... 결국 루이즈를 사지에 몰아넣을 뻔 했을 뿐만이 아니라... 그녀에게서 '그'를 잃어버렸다는 상실감에 빠뜨려 오랜 시간동안 눈물을 흘리도록 만들고 말았습니다. 이제 다시는... 저로 인해 루이즈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까..." 그러던 차에, 누군가가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죠?" "저입니다." 앙리에타의 스케쥴을 관리하고 있는 비서관의 목소리렸다. '들어오세요.'라고 대답하자 머리를 뒤로 당겨묶고 안경을 쓴 깐깐해보이는 인상의 30대 여성이 들어왔다. "폐하의 향후 두 주간의 일정을 확안하고자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부탁드릴게요." 비서관은 미리 계획된 일정을 차례차례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스케쥴이 거의 분 단위로까지 매우 빡빡하게 짜여진 탓에, 그냥 앉아서 듣기만 해도 앞날이 아득해질 정도로 골치가 아파질 정도였다. 그야말로 숨 돌릴 틈도 없다는 말이 이것 이상으로 적절한 상황이 없을 정도였던 것이다. '루이즈는 내게 하루 정도는 쉬어달라고 부탁했지만... 도저히 그 걱정을 해소해줄 수는 없을 것 같아. 이대로라면 조만간 취침 시간까지도 줄여야 할지도...' 그렇게 앙리에타가 속으로 중얼거리는 것과는 무관하게 비서관은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서 계속 늘어놓았다. "(전략)...그렇게 해서, 제 1주 프레이야의 다에그 요일에는 로말리아 대사님과의 회식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이 때는 의상을 로말리아 예복으로 갖추셔야 하므로, 따라서 옷을 갈아입으실 시간을 30분 정도 마련토록 하겠습니다." "네." 앙리에타는 한숨짓고 싶은 기색을 억누르고는 지친 기색은 티끌만큼도 내비치지 않도록 대답했다. 하지만, 비서관 역시 앙리에타가 매우 바쁜 일정으로 인해 고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 다음 이야기를 할 때에는 다소 망설이는 듯한 기색을 보였다. "그 다음 날은 허무의 요일입니다만... 어떻게 할까요? 본래는 슬레이프니르의 무도회 참석이 예정되어 있습니다만, 역시 취소하도록 할까요?" 비서관의 입에서 직접 취소해도 된다는 듯한 뉘앙스의 말이 나오자 앙리에타는 안도한 듯 되물었다. 단 하루라도 휴일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귀중한 일이었던 것이다. "정말 그래도 괜찮은가요?" "네, 무도회라고는 하지만 본래 마법 학원의 신입생 환영회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일단은 학원장 오스만씨의 요청으로 일정에 포함시키기는 했습니다만... 아무리 그래도 그러한 곳에 폐하를 내빈으로 초청하다니, 그 분도 국사와 학원 행사를 혼동하고 계신 모양입니다." 그 무도회가 마법학원에서 열린다는 사실을 들은 앙리에타는 고개를 들었다.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거기에 참석하도록 하지요. 그렇게 처리해주도록 하세요." "그, 그야... 폐하께서 참가해 주신다면야 모두 기뻐하겠습니다만... 정말로 괜찮으시겠습니까? 모처럼의 휴일인데, 그보다는 편히 쉬시는 편이 낫지 않을까 사려됩니다만..." 비서관이 걱정스러운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앙리에타는 상관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마법 학원은 조국의 내일을 책임질 귀족 자제들의 배움터입니다. 그런 곳의 신입생이라면 격려차 방문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죠." 앙리에타가 친히 참석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기 때문에 비서관으로서도 더는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후, 일정 조회가 끝난 뒤 비서관은 방 밖으로 나갔고, 홀로 남겨진 앙리에타는 한숨을 쉬면서 반지를 바라보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어쨌든, 이 마음이 어떤 것인지 확인할 필요 정도는...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 마음에 대해서 확실히 알지도 못하는 상태로는... 저 자신도 명확한 태도를 고수하지도 못하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루이즈에게 상처를 입히게 될런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그런 것 만큼은 피하고 싶습니다." ---------------------------------------------------------------------- 우리 앙리에타가 달라졌어요?! |